툭하면 법정으로… 검찰 고발이 일상… '정치 실종' 여의도

입력
2022.09.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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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극한 대립으로 입법 과정 부실
정치로 풀 문제 법원·검찰서 해결 시도
"승복 문화 결여·팬덤 정치가 주된 원인"
"정치 사법화가 정치 불신 원인 인식해야"


"정치가 제 역할을 망각하고, 갈수록 사법에 종속되고 있어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가처분 신청 과정을 지켜본 고위 법관은 한숨을 내쉬며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했다. 잘잘못을 떠나 정당 내부 문제를 법원을 통해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승패에만 관심을 보일 뿐 이를 부끄러워하는 정치인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선을 전후해 여야의 무차별적 고소·고발이 이어지면서 뒷걸음질치고 있는 여의도 정치의 민낯은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법조인들은 임계치에 도달한 '정치의 사법화' 현상을 한목소리로 우려하고 있다.

극한 대립에 입법 과정 부실

'정치의 사법화'는 중요한 정치·사회적 이슈나 갈등이 정상적인 정치 과정 대신 법의 잣대로 결판나는 현상이다. 민주화 산물로 출범한 헌법재판소가 2000년대 들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과감히 판단하면서 전면에 등장했다.

헌재는 2004년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위헌),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기각), 이라크 파병(각하) 등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 판단했다. 헌재 입장에선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동시에 여의도의 정치력 부재도 보여줬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그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국회와 정부가 정책과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가 사법에 이르는 사례가 수십 건"이라며 '정치의 사법화'를 문제 삼았다.

18년이 흘렀지만 올해도 비슷한 풍경이 보인다. 헌재에선 '검찰 수사권 축소법(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의 위법성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당초 여야가 합의했다가 번복된 이후 수정안의 입법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 침해가 있었는지를 두고 양당은 정면 충돌하고 있다. 법무부도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 법안의 위헌성 여부도 쟁점이 되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가 법률을 만들 때 쟁송 대상이 안 되도록 머리를 맞댈 생각이 아예 없는 듯하다"며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극한 대립 탓에 법률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과정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입법 논란이 툭하면 법정으로 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 총 쏘지 마라"고 말하지만...

정치권에서 소송전은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 입법 과정에서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여야 다툼이 국회를 넘어 법원이나 검찰로 이어지는 광경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019년 4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선거제 개편안에 대한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충돌로 여야 의원 27명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쌍방 고소·고발 150여 건에, 고발된 의원만 100여 명에 달할 만큼 양측 갈등은 극에 달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퇴임식에서 “스스로에게 총을 쏴서 죽이는 일이 절대 있어선 안 된다”고 의원들에게 당부했을 정도다.

법원과 검찰로 향하는 벼랑 끝 대결은 선거 전후 가장 격렬해진다.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던 지난 대선의 경우,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장동·백현동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민주당 역시 소추되지도 않는 현직 대통령을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하고 '김건희 특검' 카드로 맞불을 놓은 상황이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심해지면 정책과 정치력보다는 일부 정치인의 일탈과 폭로에만 관심이 쏠려 민주주의 발전에 득 될 게 없다"고 지적했다.

"당론에 구속되지 않아야"

법원이나 헌재가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 자체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헌재 연구관을 지낸 한 법조인은 "법안 처리과정에서 절차적 위반이 있거나 당헌·당규에 위배되는데도 극한 대립으로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는 사법적 판단이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1996년 신한국당의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가 헌재에서 야당 의원의 심의·표결권 침해라는 판단이 나온 뒤 새벽 기습 처리 같은 꼼수가 사라진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준석 전 대표와 국민의힘 사이의 갈등처럼 정당 내부 다툼까지 법적 판단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는 '정치의 사법화'의 부정적 모습이란 지적이 나온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당 내 자율적 해결이 마땅한 사안까지 법정으로 끌고 들어가면 사법부까지 정쟁에 휘말리게 된다. 정치 사법화의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승복의 정치가 사라지고 진영 논리와 팬덤 정치가 지배하는 여의도 문화가 정치 사법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여야 모두 당론에 구속되지 않고 숙의와 자유토론을 보장해야 다양한 이해관계 조정과 문제해결 능력이 생긴다"며 "당론에 다른 뜻을 보였다고 문자 폭탄을 맞게 하거나 징계하거나 공천에서 배제하면 제대로 된 정치가 성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 올해의 이슈' 편에서 "대립이 있어도 법정이 아니라 정치 과정에서 해결되도록 다양한 기제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손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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