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대학생 리서처들과 함께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음식점과 카페 정보를 모으러 휠체어를 가지고 모 대학교 앞에 갔을 때의 일이다.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는 경사로 사진을 찍고 있던 중이었다. 한 순댓국집 사장이 불쾌한 표정으로 나왔다. "뭐하세요? 왜 사진을 찍어요?" "휠체어 접근 가능한 곳 정보를 모으는데 여기는 휠체어로 들어올 수 있어서요." "이 간판에도 저작권이 있어요. 찍지 마세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많은 블로그에 올라 있는 사진들은 왜 그냥 놓아 두는 것일까? 유명한 연예인이 와서 식사를 하고 인증샷을 올린다고 해도 저작권 타령을 할까? 휠체어나 유아차는 손님이 아니라 영업 방해물이라도 된다는 걸까?
우선 '휠체어 접근 정보'를 굳이 알려야 할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곳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엔 각종 사업장은 장애인 편의시설을 꼭 갖춰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구체적인 시행령을 보면, 작은 건물이나 매장은 대부분 의무가 면제된다. 2022년 전까지는 300㎡(약 90평) 이하인 곳엔 접근 시설을 안 만들어도 됐다. 대부분의 동네 음식점이나 약국 상점 등이 그렇다. 아주 최근에 지어진 곳을 제외하곤 동네 가게에 휠체어가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다. 2022년부터는 면적기준이 바뀌어 50㎡ 이상으로 강화됐지만 그나마 신축, 증축, 개축을 하는 경우에만 접근성 시설을 의무화했다.
많은 휠체어 이용자들이 휠체어 접근 시설을 알아보기 위해 미리 정보검색을 한다. 무의가 휠체어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나절 나들이를 위해 최소 30분~3시간까지 접근성 조사를 한다. 즉흥적 외출이란 불가능하다. 휠체어 이용자들이 접근성 정보검색을 할 때 가장 많이 보는 게 바닥까지 다 찍힌 출입문 사진 정보다. 즉 동네 순댓국집은 민간 업소지만 그 앞의 사진을 보고 이용자들의 검색 시간을 현저히 줄여 줄 수 있으니 공익적 데이터인 거다.
프랑스의 '디지털공화국법'에는 공익데이터란 개념이 존재한다. 공익데이터엔 민간이 만들었지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교통약자의 이동 시간과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접근성 정보는 민간이든 공공이든 공익데이터로 간주하고 개방하여 널리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등편의법의 '본체보다 더 힘센 시행령'은 사회인식 차원의 문제를 만들어 냈다. 앞서 언급한 사업자들은 접근성 시설을 설치하는 걸 의무가 아닌 '장애인 시혜'로 생각하고 있다. 장애인을 손님으로 취급하지 않는 순댓국집 사장님의 발언에서 그런 문제점을 엿볼 수 있다.
인프라와 인식은 상호 시너지를 내며 발전한다. 미국의 경우 1991년 통과된 미국장애인법 이후 그런 시너지를 통해 장애인식이 높아졌다. 미국에 갔던 한 지인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에도 휠체어로 못 가는 곳이 꽤 있었어요. 하지만 어떻게든 들어올 수 있도록 최대한 편의를 제공했죠. 미국에서 휠체어로 다니면서 지도를 미리 찾아볼 필요는 없었어요."
많은 중앙정부, 지자체 공무원들이 요즘은 '공익데이터' 개념을 잘 이해한다. 이게 어느 날 정말 법으로 입안되는 날 그 순댓국집에 가서 다시 말하려고 한다. "공익데이터 수집하러 왔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