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1920년대는 ‘광란의 시대(Frenzied times)’ 또는 ‘아우성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 불린다. 1차대전 전쟁 특수로 미국 GDP가 연평균 9%씩 급성장하며 유럽을 추월했고, 자동차 라디오 등 신문물에 대한 대중적 소비 욕구가 폭주하던 때였다. 부와 물질·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빈부격차가 더불어 심화했고, 마피아도 금주법 시대의 밀주 유통 등으로 세를 불려갔다. 1929년 대공황으로 파국을 맞이할 때까지 미국인들은 1990년대 ‘닷컴 버블’을 능가할 만큼 부푼 시절을 누렸다.
1920년 9월 16일 정오 무렵, 뉴욕 월가 한복판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짐마차에 실려 있던 45kg가량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 점심 식사를 하러 몰려 나온 월가의 증권맨 등 40명이 숨지고 143명이 중상을 입었다.
목격자들 증언에 따르면 당일 한 남성이 JP모건 빌딩 맞은편 뉴욕시금사무소(Assay Office) 앞에 마차를 세우더니 곧장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시한폭탄은 불과 몇 분 뒤 폭발했다. 마차에 실려 있던 200kg가량의 주철이 함께 터지면서 그 파편으로 사상자가 늘어났다. 뉴욕증권거래소는 즉시 거래를 중단하고 직원들을 동원해 부상자 수송에 나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과정에서 현장이 훼손되면서 법무부 수사국(BOI, FBI 전신)과 뉴욕 경찰은 증거 수집 등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금사무소가 타깃이었다는 설이 있었다. 미국 서부에서 수송된 금괴 원석과 인근 재무부 금고의 금괴를 노린 범죄였다는 추정. 켄터키 포트녹스 금괴 저장소가 건립(1936)되기 전이었다. 자본주의 체제 붕괴를 노린 좌파 혹은 무정부주의자들의 소행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한 무정부주의자가 용의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범행 동기와 배후 역시 미궁에 빠진 채 1940년 수사도 종결됐다. 뉴욕증권거래소는 바로 다음날 거래를 재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