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서방 국가 지도자들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 참석을 위해 대거 런던에 집결하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 정상이 그들의 텃밭인 중앙아시아에서 대면 회담에 나선다. 우크라이나 전쟁 한복판에서 서방 정상들이 유럽 한쪽에서 반(反)러 연대를 재차 도모하는 사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반대쪽 에서 결속을 다지는 양극단의 외교가 또 한번 펼쳐지는 것이다. 외교가의 관심은 우크라이나에 패퇴하고 있는 러시아를 향해 중국이 얼마만큼의 힘을 실어주느냐에 쏠리고 있다.
12일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이 오는 14~16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14일 카자흐스탄 누르술탄을 거쳐 15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로 이동해 제22차 상하이협력기구(SOC)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일정으로 푸틴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도 이때 열릴 전망이다. 시진핑 주석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19일)에 참석해 서방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 대신 러시아와 스킨십 강화라는 대립각을 택한 셈이다.
이번 회담은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 모두에게 '시의적절한 만남'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내달 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통해 3연임을 확정지을 시 주석으로선 가장 강력한 우방인 러시아의 지지가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푸틴도 중국의 경제·군사적 지원이 절실하다.
미국과 서방을 견제하기 위해 양국이 협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대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미국 CNN에 "러시아가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러시아 내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며 (중러의) 대미 견제력도 약화할 것"이라며 "시 주석으로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밀리도록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건은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에게 내줄 지원 수준이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측 입장에 공감을 표명하면서도 군사·경제적 차원의 직접 지원에는 선을 그어왔다. 정치적 지지 범위를 벗어난 지원을 제공할 경우 미국과 유럽이 경고해온 대로 중국에 대한 2차 제재가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포르트야코프 러시아과학원 극동문제연구소 부소장은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모스트(SCMP)에 "이미 경제적 난국에 직면한 중국은 서방의 2차 제재를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염병 확산 상황으로 경기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경제 제재를 부를 수 있는 수준의 러시아 지원에는 거리를 둘 것이란 뜻이다.
중국의 소극적 지원은 이미 예고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공산당 서열 3위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동방경제포럼 참석차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뱌체슬라프 볼로딘 하원의장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러시아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입장도 표명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신화통신 등 관영 언론에는 "상호 간 핵심 이익을 확고히 지지하기를 원한다"고만 밝혔을 뿐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언급은 소개되지 않았다. CNN은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대한) 베이징과 모스크바 간 적잖은 입장차가 드러나고 있는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마크 카츠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푸틴은 더 많은 중국의 지지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오겠지만,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이 원하는 만큼의 지원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