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 정책' 법령을 제정했다. 2013년 제정된 종전 법령은 핵무기 사용 조건을 '핵 보유국이 침략하거나 공격하는 경우'로 한정했지만, 새 법령은 '핵 및 비핵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규정해 선제 공격을 선택지로 명문화했다. 핵무기 지휘통제권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격받으면 자동으로 핵 보복 공격에 나선다는 조항도 신설했다. 김 위원장은 같은 날 시정연설에서 "이번 법제화로 핵 보유국 지위가 불가역적인 것이 됐다"며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비핵화란 없다"고 강변했다. 북한은 이런 결정을 9일 정권수립일 74주년에 맞춰 보도했다. 8일 우리 정부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당국 간 회담 제안도 긍정적 답변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한반도 안팎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유감스러운 처사다. 북한은 지난 4월 김 위원장 연설을 통해 핵 선제 공격 가능성을 시사하더니, 결국 입법 절차까지 동원해 '핵은 공격용이 아닌 억지용'이라던 기존 입장을 공식 폐기했다. 사실상 핵무기를 실전용으로 쓰겠다는 선언인데, 이는 북한의 소형 전술핵 개발 움직임과 맞물려 남한에 직접적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새 법령에도 핵 보유 적대국과 손잡은 경우 비핵국도 공격 대상이라는 조항을 유지한 것을 두고, 한미 군사훈련 재개를 대남 도발의 빌미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을 원천 거부하면서 우리 정부의 '담대한 구상'을 포함한 외교적 프로그램은 당분간 작동하기 어렵게 됐다. 한미 간 4년 8개월 만에 재개되는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가 오는 16일 열리는 만큼 미국의 '핵우산' 제공 등 기존 대북 핵억지 정책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아울러 북한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며 외교적 해법을 지속적으로 타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미국 등 우방은 물론이고 대중·대러 외교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