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8일(현지시간) 96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시대에 발맞춰 왕실을 개혁하고 국민과 가까이 소통하며 현대 왕실의 모범을 보여준 여왕을 영국 국민들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다.
버킹엄궁은 이날 오후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콘월 공작부인 부부, 찰스 왕세자의 장남인 윌리엄 왕세손 등 왕실 가족들이 여왕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왕위 계승자인 찰스 왕세자는 즉각 국왕 자리를 이어받았다.
찰스 왕세자는 성명을 통해 “사랑하는 어머니 엘레자베스 2세 여왕의 죽음은 나와 내 가족 모두에게 가장 큰 슬픔”이라며 “소중한 군주이자 많은 사랑을 받는 어머니의 죽음을 깊이 애도한다”고 말했다.
1926년 태어난 여왕은 25세이던 1952년 2월 6일 즉위해 70년 214일간 왕좌를 지켰다. 영국 역사상 최장수 국왕이다. 또 별세 전까지 현존하는 군주 가운데 최고령자(96세)라는 기록도 갖고 있었다.
여왕은 한 세기를 온몸으로 관통한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목격했고, 대영제국에서 영연방으로 이행, 냉전 시대와 소련 해체, 영국의 유럽연합(EU) 가입과 탈퇴도 겪었다.
여왕 재위 기간 거쳐간 영국 총리는 윈스턴 처칠부터 리즈 트러스까지 총 15명에 달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해 역대 모든 미국 대통령 가운데 4분의 1을 직접 만났다. 여왕은 영국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15개 영연방 왕국의 군주직도 겸하고 있는데, 이 나라들 면적을 합치면 러시아보다도 넓다. 여왕의 위상과 상징성을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여왕은 애초부터 왕위 계승자는 아니었다. 조지 5세의 장남 에드워드 8세가 1936년 미국인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국왕 자리를 포기하면서 차남인 조지 6세가 왕위를 계승했고, 자연스럽게 조지 6세의 장녀인 여왕이 그 뒤를 이어받았다. 1952년 조지 6세 사망 당시 여왕은 케냐를 방문 중이었는데, 공주 신분으로 출국해 여왕 신분으로 귀국하게 된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여왕은 즉위 이후 시대 변화에 발맞춰 군주제 개혁과 왕실 현대화를 시도했다. 1953년 6월 2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대관식은 최초로 TV를 통해 생중계됐고, 2,0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1970년에는 가족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평범한 가정 생활을 방송에 공개해 인기를 얻었다.
1992년에는 윈저성 화재 복구사업에 소요되는 천문학적 비용을 두고 비판이 거세지자 스스로 면세 특권을 내려놓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여왕은 왕실 공개 행사도 자주 열어 대중과 꾸준히 소통했다. 왕실 생활도 비교적 검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모두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왕실을 지키려는 분투였다.
영국은 입헌군주제라 국왕은 국가 원수로서 상징적 권한만을 갖고 있다. 총선 전 정부 해산과 총리 임명, 의회 개원 연설, 법안 승인 등 의례적 업무를 담당하며 정부 운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정치적 중립도 유지해야 한다. 여왕도 이런 전통을 철저히 지켰다. 일례로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 당시 여왕은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는 스코틀랜드의 선택에 따라야 한다”며 거리를 뒀다. 그러면서도 영연방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달라서, 모든 영연방 국가를 적어 한 번 이상 방문했다.
그런 여왕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자녀들은 불륜과 이혼 등 사생활 문제로 구설에 오르내리며 애써 쌓아 올린 왕실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1997년 파파라치에게 쫓기다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는 ‘왕실 폐지론’까지 불거졌다. 지난해엔 해리 왕손의 아내인 메건 마클 왕손빈이 왕실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폭로해 또 한 차례 폭풍우를 겪었고, 올해 초에는 앤드루 왕자가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으로 왕실 후원자 자격을 박탈당했다.
가장 큰 아픔은 지난해 4월 남편 필립공과의 사별이었다. 여왕은 1939년 14세 때 영국왕립해군사관학교 생도였던 그리스ㆍ덴마크 왕가 출신 필립공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1947년 11월 20일 결혼해 74년간 해로했다. 여왕은 남편에 대해 “나의 힘이자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여왕 부부는 찰스 왕세자,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등 자녀 4명과 손자 8명, 증손자 12명을 뒀다.
여왕은 올해 6월 재위 70주년을 지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를 치렀다. 영국 전역이 축제 분위기로 들떴지만, 필립공이 떠난 뒤 급격히 쇠약해진 여왕은 행사 첫날과 마지막 날에만 잠시 모습을 비쳤다. 여왕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예정된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왕으로서 마지막 공식 임무는 6일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사직서를 수리하고,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를 임명하는 일이었다. 7일 예정돼 있던 정치 자문 기구 회의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료진 권고로 취소했고, 8일에는 이례적으로 “여왕의 건강 상태가 걱정스럽다”는 왕실 성명이 나왔다.
왕실 가족들이 밸모럴성에 속속 모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영국 국민들은 버킹엄궁 주변에 모여 여왕이 쾌차하기를 빌었으나, 워낙 고령이라 오래 버티지 못했다.
영국 BBC방송은 “여왕의 일생은 강한 의무감, 국민과 왕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단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며 “영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며 군주제의 역할이 의문시되는 시대에 많은 이들에게 변하지 않는 구심점이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