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녹색, 경호원은 노랑... 한 현장 두 민방위복

입력
2022.09.10 19:00




대통령은 녹색(그린), 경호원들은 노란(라임)색. 총리와 장관도 대통령처럼 녹색, 자치단체장이나 지역구 국회의원은 노란색이다. 최근 복수의 태풍 피해 현장에서 목격된 민방위복 색깔이다. 라임색은 현행 민방위복, 그린색은 새로 도입될 민방위복 시제품 다섯 가지 후보 중 하나다.

이 같은 '동일 현장 두 가지 색 민방위복'은 행정안전부가 17년 만에 민방위복제 개편을 추진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각기 다른 색깔의 민방위복이 업무나 인식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칫 '중앙부처는 그린, 지역은 라임색' 또는 '중앙은 새옷, 지역은 헌옷'처럼 민방위복으로 중앙과 지역을 차별하는 것처럼 오해받을 소지도 있다.

지난 7일 태풍 '힌남노'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북 포항시 한 아파트단지.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수행원 대다수가 그린색 민방위복 시제품을 입고 있었지만 경호 인력 상당수는 기존 라임색 민방위복을 입었다. 시제품 물량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가급적 일행과 동일한 복장으로 눈에 띄지 않게 업무를 수행해야 할 경호원들이 이날은 한눈에 봐도 두드러지는 '튀는' 복장을 하게 된 것이다. 다음 날 부산 피해 현장을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그린색 민방위복을 입었지만 박형준 부산시장 등 지자체 관계자들은 라임색 민방위복을 입고 나왔고, 상대적으로 수가 적었던 총리 일행이 두드러져 보이기도 했다.


민방위복 변경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다. 민방위복은 재난현장에서 구호 등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의 신체 보호나 실용성도 중요하지만, 일반인들의 눈에 잘 띄고 쉽게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인 구호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안부는 새 민방위복이 기존 민방위복보다 현장 활동에 필요한 방수·난연 등 기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지만, 일부 국민들은 눈에 잘 띄는 라임색을 어두운 그린이나 네이비색으로 바꾸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비로 민방위복을 구입해야 하는 공무원들 사이에선 일방적으로 새 민방위복을 변경해 의도치 않은 지출을 하게 됐다며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포항을 찾은 윤 대통령의 민방위복 오른쪽 팔에 벨크로(찍찍이)로 부착된 '대통령'명찰을 두고 "대통령을 바보로 만들지 말라","촌스럽다"는 등의 혹평도 나왔다.



민방위복은 2005년 현행 라임색으로 바뀌기 전까지 약 30년간 카키색을 유지했다. 당시 정부는 '주의' 또는 '조심'의 의미로,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라임색을 채택하고 현장 활동성과 실용성, 신체 보호 기능 등을 고려해 현 민방위복을 디자인했다. 그런데, 17년이 흐르는 동안 활동성이나 착용성이 더 좋은 복장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행안부는 지난달 17일 개편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새 민방위복은 경계·공습·해제를 상징하는 민방위 로고를 평화와 시민보호를 상징하는 국제민방위 마크와 한국적 요소를 결합한 새 로고로 대체하고, 스타일은 점퍼형에서 사파리형으로, 소매는 단추형에서 스냅형으로 변경했다.

색상은 다크그린, 네이비, 그린, 그레이, 베이지 등 총 5가지로, 이중 지난달 국민선호도 조사에서 호평을 받은 그린과 네이비가 을지훈련에서 시범적으로 사용됐다. 행안부는 민방위기본법 시행령 등 관련 법령 개정을 거쳐 내년까지 민방위복제 개편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다만, 2024년까지는 새 민방위복 착용을 강제하지 않고 현 라임색 민방위복과 혼용한다는 방침이다.

주무부처 수장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민방위복 시제품 홍보에 남다른 공을 들이고 있다. 국민 선호도 조사에서 뽑힌 그린과 네이비는 물론, 그레이와 다크 그린, 베이지까지 다섯까지 색상을 번갈아 입고 다양한 현장을 누빈다. 그러다 보니, 지난달 삼복 더위 속에서도 사파리 점퍼 형태의 민방위복을 입고 현장을 지켜야 했다.











홍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