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시간 45분, 국내 산불 사상 최장 시간으로 기록된 울진·삼척 산불이 진화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활엽수 지대에서는 새순이 제법 자라는 등 자연 치유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불에 데인 소나무 대다수는 여전히 새까만 기둥과 앙상한 가지만 남은 그대로, 나무의 형체만 겨우 유지하고 서 있다. 이 많은 소나무들은 다 죽은 걸까.
8월 27일 산불 피해가 가장 컸던 경북 울진군 북면 주인1리 야산을 찾았다. 불탄 소나무와 각종 탄화재들이 그대로 남아 바람이 불 때마다 사방으로 날렸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숲을 자세히 살펴보니 몇몇 소나무에서 연한 녹색의 새 솔잎이 제법 풍성하게 자랐고, 거북등처럼 갈라진 기둥 껍질에서는 송진이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나무의 송진은 나무에 상처가 생기면 자연적으로 분비돼 상처를 치료한다고 알려졌다. 불탄 소나무 껍질에서 끊임 없이 흘러내린 송진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에 난 상처를 새하얗게 뒤덮은 채 굳어 있었다. 마치 소나무 스스로가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듯.
물론, 송진이 반드시 이로운 것만은 아니다. 산불 전문가들은 송진의 식물성 기름 성분이 산불이 발생했을 때 불을 확산시키는 휘발유 역할을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에서 송진이 분비된다는 것은 소나무가 살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영근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실장은 “송진은 불에 탄 소나무가 살아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면서, “수관(소나무 상층부) 부분까지 불에 탔다면 죽었다고 할 수 있지만, 수피(소나무 껍질) 부분만 탔다면 치료 후 생존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불에 탄 소나무의 생사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판별할 수 있다. 송진이 나온다고 해서 곧바로 '살아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소나무가 죽으면 바로 고사목이 되는 경우도 있고, 1~3년 정도까지 살아 있다가도 고사목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나무의 생사를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국립산림과학원은 현재 불탄 나무들의 생존 여부를 판단할 기준을 마련하고 있고, 연구는 약 60% 정도 진행됐다. 생존 기준은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산불 당시 발생한 그을음의 높이와 넓이다. 이를 입체적으로 측정해 심각, 보통, 경미, 세 단계로 나누고, 심각 또는 보통 단계는 벌채를 한 뒤 자연 복원 또는 인공 복원을 상황에 따라 결정한다. 경미 단계는 자연적인 복원을 원칙으로 한다.
무수한 개체의 소나무들이 송진을 눈물처럼 쏟으며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만, 지자체의 움직임은 아직 더디다. 울진군은 산림조합중앙회에 용역을 주어 산불 피해 지역 내 소나무들을 살아있는 나무와 벌채를 해야 할 나무들로 구분하고 있다. 지난 6월 산불 피해지역을 자원복원이 가능한 지역과 인공 복원을 해야 할 지역으로 나누는 작업에 착수해, 12월에 결과가 나오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산림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산불에 그을린 소나무 중 ‘미인송’처럼 평상시 귀한 대접을 받는 보호수를 제외하고는 직접적인 도움을 줄 방법은 없다. 그저 각 개체마다 스스로의 회복 능력에 따라 살아남거나 고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겨울에도 광합성을 하는 소나무의 특성상 올겨울 생육에 적합한 온도가 유지되고, 봄 가뭄을 피할 수 있다면 상당수 소나무가 회생의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6개월째 이어지는 산불의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는 소나무들이 내년 봄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