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배기 육수진 양과 가족들에게 이번 추석은 의미가 매우 특별하다. 16개월 동안 수진 양을 버티게 해줬던 ‘인공 심장’을 떼내고 2년 만에 집에서 명절을 맞기 때문이다.
수진 양은 지난 2020년 생후 6주차에 심정지가 발생했다. 심폐소생술 끝에 의식을 되찾았지만 ‘비후성(肥厚性) 심근병’ 진단을 받았다.
비후성 심근병은 심장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심장 혈액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어린이 10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소 난치성 심장병으로, 심각해지면 갑자기 심장이 멈춰 돌연사할 수 있다.
신유림(흉부외과)ㆍ정세용(소아심장과) 세브란스병원 선천성심장병센터 교수팀은 수진 양에게 약물 치료를 시행했지만, 호흡곤란 등 심부전 증세가 계속됐다.
심장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에크모(인공심폐기·ECMO) 치료를 두 차례 시행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의료진은 수진 양의 심장에 인공 심장이라 불리는 ‘심실 보조 장치(Ventricular Assist DeviceㆍVAD)’를 부착하기로 결정했다.
VAD는 심장이 혈액을 온몸에 잘 보내도록 도와주는 장치다. 장치를 심장 안에 부착하는 성인과 달리 체구가 작은 어린이 환자는 VAD 도관을 심장에 삽입한 후 체외로 통과시켜 몸 밖 펌프에 연결한다.
어른 환자의 경우 체내에 VAD를 삽입하면 퇴원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반면 어린이 환자는 퇴원하지 못한 채 병실에서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 장치를 몸 밖에서 몸속으로 연결하기에 전담 의료진이 24시간 하루 10회 이상 관찰해야 할 정도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펌프 움직임과 혈전 발생 여부를 확인하고, 피부 소독ㆍ항생제 투여 등 부가적 치료와 발달을 위한 재활도 병행하게 된다. 수진 양이 인공 심장을 달았던 기간은 16개월로 국내에서 가장 오랜 기간이다.
말기 심부전 상태의 수진 양이 VAD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심장이식이 필요했다. 문제는 어린이 환자의 심장이식은 적합한 기증 심장을 구하기가 성인 환자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뇌사자의 심장 기증 사례가 적은 데다 어린이 환자의 체구가 작다 보니 공여자의 심장 크기도 중요한 고려 요소다. 무엇보다 공여자가 나타날 때까지 어린이 환자의 심장 기능을 최적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의료진은 이식받을 수 있는 심장을 구하기까지 수진 양의 심장 건강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중증 어린이 환자를 위한 세브란스병원 소아심장중환자실(PCCU)과 여러 진료과 의료진이 항시 대기하며 공동 대응하는 다학제 진료 시스템의 도움이 컸다.
의료진이 최근 수진 양에게 이식 가능한 심장 공여자를 찾으면서 무사히 심장이식 수술이 이뤄질 수 있었다.
수술을 맡은 신유림 교수는 “비후성 심근병을 앓던 생후 6주의 수진이를 처음 만나 약물 치료, 에크모 치료를 거쳐 오랜 기간 VAD 치료까지 진행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며 “심장이식 수술을 무사히 마쳐 수진이가 가족들과 집으로 돌아가서 기쁘고 오랜 시간 잘 견뎌준 수진이가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2020년에도 당시 국내 최장 기간이던 8개월 동안 VAD를 부착한 어린이 환자의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바 있다. 이번에 2배에 가까운 기록을 깨고 심장이식 수술을 시행하면서 어린이 심장 치료의 우수성을 입증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