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름달엔 옥토끼, 페루 보름달엔 두꺼비가 산다

입력
2022.09.10 17:00
[인류가 동물을 본 달표면에 얽힌 과학]
맨눈으로도 울긋불긋 오묘한 달의 모습
생성 초기 화산활동, '고요의 바다' 만들어
뒷면엔 왜 바다가 없나 여전히 수수께끼
아르테미스·中 '옥토' 등 달 탐사 본격화

인류 역사에서 달은 신화적인 존재였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과 달리, 달은 유독 커다랗고 모양도 수시로 바뀌는 기이한 존재였다. 속은 또 울긋불긋한데, 보름달이 뜰 때면 그 기묘한 형상이 맨눈으로도 보였다. 그래서 항성, 행성, 위성이라는 개념이 있을 리 없던 옛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누구는 달에서 풍요(한가위)를 봤고, 누구는 달에서 광기(영어 단어 lunatic)를 봤다.



한민족을 비롯한 동양 문화권에선 달에 토끼가 산다고 생각했다. 'V'자 형태로 보이는 달의 어두운 부분이 꼭 토끼 귀를 닮아서다. 떡방아를 찧는 옥토끼 이야기는 여러 종류의 전래동화로 남아있다. 불교에서는 제석천(불교의 십이천 중 하나)이 제 몸을 공양한 토끼를 기려 달로 올려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두가 달에서 토끼를 본 것은 아니다. 스페인 지역에선 같은 'V'자를 보고 당나귀를 떠올렸고, 다른 유럽 지역에선 꽃게가 집게발을 드는 형상을 봤다. 이밖에 페루에선 두꺼비, 아라비아에선 사자가 살고 있다고 믿었고, 악어, 개구리 등을 떠올린 사람들도 있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에서 달에 등불을 든 노인이 있다고 묘사했다. 달을 보고 떠올렸던 형상은 문화권 별로 매우 다양해 루나 파레이돌리아(lunar pareidolia·달에서 특정한 패턴을 찾아내려는 인식의 오류)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여기는 휴스턴, 달에 토끼가 있는가"

달을 더욱 신화적으로 만들었던 달의 음영지역은 과학적 발견이 이뤄진 뒤부터는 '바다'(Mare)라고 불렸다. 달을 망원경으로 관측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바다라고 명명한 것이 명칭의 기원이 됐다.

달에 바닷물이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달의 바다는 비교적 평평하고 매끄러운 일종의 분지 지역이다. 지대가 낮고 암석도 어두운 현무암이라, 지구에서 볼 때도 어둡게 보인다. 형성 원인, 위치 등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 토끼 귀, 당나귀 귀, 게 집게 등으로 보였던 'V'자 지역은 각각 '풍요의 바다'(Mare Fecunditatis)와 '술의 바다'(Mare Nectaris)다. (고해상 달 지도 바로가기)

1969년 7월 인류 최초로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곳은 토끼의 콧등에 해당하는 지점인 '고요의 바다'(Mare Tranquillitatis)였다. 여러 루나 파레이돌리아 중에서도 달 토끼는 유독 유명했던 모양인지, 당시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아폴로 11호는 착륙을 앞두고 이런 농담을 교신으로 주고받았다고 한다.

"중국 전설에 따르면 달에 큰 '토끼'가 있다는 데, 한번 찾아봐 주겠나." (나사)
"알았다. 토끼 소녀가 있는지 주시하겠다."(조종사)


매끈하면서도 거친 달의 지형

형성 시기·원인 등 어떤 기준으로 바다를 정할 것이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달에는 약 20~30개의 바다가 존재한다.

바다라는 지형의 형성과정을 알기 위해선, 그 외의 지역인 달의 고지(Lunar Highland)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고지는 주로 사장석(화강암에서 가장 흰 광물)이라는 밝은 광물로 이뤄져 있다. 지각 형성 이후 46억 년 동안 계속된 운석 충돌로 파헤쳐져, 지면이 울퉁불퉁하고 거칠다. 크레이터(운석 구덩이)의 깊이는 2,000~3,000m에 달한다.

바다는 아직 화산 활동하던 달 생성 초기, 크레이터를 용암이 메워 생겨난 지형이다. 운석의 충돌로 인해 내부의 마그마가 분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암으로 메워졌을 당시의 매끄러운 지형이 아직 남아있어 비교적 평평하다. 달이 잘 보이는 날이면 육안으로도 그 형질이 느껴질 정도다.

천체 사진을 찍는 작가 앤드루 매카시가 지난해 11월 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한 달의 3차원(3D) 사진을 보면 달의 실제 지형을 이해하기 쉽다. 정민섭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 선임연구원 "침식 작용이 없기 때문에 고지는 생각보다 거칠고 화산작용으로 생겨난 바다는 생각보다 평평하다"며 "다만 해당 사진은 다소 과장돼 있다"고 설명했다.


달 탄생·역사의 비밀을 품은 옥토끼

달의 바다가 과학적 궁금증을 증폭시킨 건 달의 뒷면(far side)을 알고부터다. 소련의 탐사선 '루나 3호'는 1959년 10월 7일 인류 최초로 달 뒷면을 촬영했는데, 상상과는 너무 달랐다. 앞면(near side)을 가득 메우던 바다가 뒷면에는 거의 없던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구에선 달의 앞면만 볼 수 있다.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같아 아주 오랜 기간동안 지구만 바라봤다. 지구 방향에만 바다, 즉 화산활동의 흔적이 있다는 것이 우연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늘날 달의 기원은 지구가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화성 크기의 천체 '테이아'가 지구에 충돌해 부서지면서 나온 파편으로부터 탄생했다는 '달 거대 충돌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달 앞뒷면의 비대칭성이, 달 탄생과 역사의 비밀을 푸는 단서가 될 것으로 본다. 정민섭 선임연구원은 "지구의 중력 때문에 앞면에서 마그마가 분출하기 유리했다는 설명부터, 달 뒷면의 큰 충돌이 멘틀대류를 일으켰다는 설명까지 여러 이론이 있지만, 아직 정확하게 알려지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설득력을 얻는 것은 소행성 충돌로 인한 맨틀 대류설이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는 지난 4월 미국 브라운대 맷 존스 교수 등의 공저 논문을 공개했다.(논문 바로가기) 이 논문은 에이트켄(Aitken) 분지를 형성한 충돌 때, 달 내부에서 일어난 맨틀 대류가 지금의 바다 형성의 한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달 남극에 위치한 에이트켄은 달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분지로, 달이 겪은 충돌 가운데 가장 큰 소행성 충돌이다. 연구팀은 "남극 지점의 충돌이 달의 앞·뒷면 비대칭성을 촉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시뮬레이션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른 흥미로운 주장도 있다. 천문학 저널인 '아스트로피지컬 저널 레터스'는 2014년 8월 "달 앞면에만 바다가 있는 이유는 뜨거운 옛 지구를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실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스타인 시구르드손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충돌 이후 지구와 달은 매우 뜨거웠고 가까웠는데 크기가 작은 달은 지구보다 빠르게 식었다. 하지만 뜨거운 지구를 바라보는 달의 앞면은 복사열의 영향으로 여전히 2,500도 이상이었다. 상대적으로 물렁물렁한 앞면은 충돌한 운석은 지각까지 도달, 현무암질 용암을 방출하도록 만들기 쉬웠을 것이라는 논리다.



인류는 수십만 년간 달을 바라봤지만, 여전히 달에 관한 지식은 부족하다.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인류는 다시 50여년 만에 달로 향한다.(달 탐사 기사 더 보기) 기술도 과거보다 나아졌다. 예전에는 도착이 용이한 바다 지역을 주로 갔다면, 이젠 △덜 알려진 달 뒷면 △자원이 많은 달 남극을 탐사한다. 정민섭 연구원은 "60년대 달탐사 당시 착륙의 정밀도는 가로 세로 100㎞여서, 서울에 착륙하려고 했는데 대전에 착륙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며 "그래서 안전을 위해 바다 지역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하지만 현재는 수㎞ 안에 착지할 수 있어서 세밀한 탐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나사는 20여 개국과 함께 다시 인류를 달에 보내고 상주 기지를 만들기 위해 아르테미스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무인 달 탐사 차량 위투(玉兎·옥토끼)는 아직도 달을 누비고 있다. 한국이 독자 기술로 만든 최초 달 궤도선 다누리는 라그랑주 포인트 L1을 지나 달로 항해하고 있다.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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