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전쟁’에 돌입했다. 169석의 더불어민주당이 8·28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체제’를 선택한 필연적인 결과다. 검찰의 상대는 77.77%라는 정당사에 남을 만한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권을 쥔 데다 대선 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고 낙선한 제1당 당대표다. 민주당은 검찰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는 대신 윤석열 대통령을 같은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고발하고 김건희 여사의 허위경력 및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한 특검법을 발의했다. 이 대표는 선거법위반 이외에도 10여 건이 검찰과 경찰의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전쟁이 서막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사정정국에 대한 국민의 기억은 부정적 측면이 강하다. 군사정권이 퇴진한 이후 김영삼, 김대중 정부까지도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같은 권위주의적 통치수단에 의존하고 활용하는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헌정사에서 집권여당은 사정정국으로 야당의원을 뒷조사해 약점을 들이밀고 정계개편에 활용하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 때는 사정정국의 원형인 공안통치 부활이란 비판마저 분출했다. 공안검사 출신들이 대통령비서실장(김기춘)이나 법무부 장관·국무총리(황교안)로 전면에 등장했고 사회 전분야에 공안통치 사례가 수두룩했다. 실제 검찰 내 공안조직도 강화됐다.
박근혜 정권이 내세운 슬로건은 헌법가치 부정세력 엄단이었다. 여기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담론은 핵심 축으로 작용한다. 유신헌법 전문에서 처음 명문화된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반공이라는 틀에서 개발독재를 용인하는 통로로 작용했다. 북한 공산주의와 대비해 자유를 지킨다는 개념이지만, 이를 강조하는 진영이 한국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장 파괴한 집단이란 아이러니도 있다. 검찰총장 시절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대목도 자유민주주의다.
현재의 국면을 민주당 지지층은 정치보복, 표적수사로 받아들이는 반면, 여권은 불가피한 수사로 보고 있다. 양 진영의 불신이 극에 달하면 제2의 ‘조국 사태’로 번져 나라가 두 쪽 날 수도 있다. 여당은 ‘방탄국회’ ‘방탄 야당대표’의 길을 일사천리로 완성한 이 대표가 개인문제로 민주당 전체를 볼모로 삼고 있다고 성토한다.
한 여당 의원은 필자에게 ‘이인제 강제구인’ 사례가 연상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권력 집행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상황을 떠올린 것이다. 이인제 전 의원은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돌풍으로 중도하차한 뒤 자민련으로 옮겨갔다. 그러다 2004년 5월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충남 논산시 지구당사무실에서 100여 명의 지지자들과 2주간 농성전에 들어갔다. 마치 도심 게릴라전을 벌이듯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너통과 LPG통으로 무장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사정정국과 동시에 정치의 사법화도 심각해졌다. 여당 내분의 키워드는 ‘가처분 리스크’다. 대선 때 후보와 당대표로 삐걱거리던 둘의 관계는 집권 후 ‘이준석 몰아내기’로 현실화했고, ‘윤핵관’ 권성동 원내대표의 연이은 헛발질을 고리로 여당이 스스로 비대위를 출범시키자 법원은 ‘비상상황’이 아니라고 철퇴를 내렸다. 공론의 장에서 해결돼야 할 쟁점들이 법원에서 해소되는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사법의 정치화를 부추긴다. 정국을 주도해야 할 집권당이 정치무능을 드러내면서 법원이 헌법적 가치에 따라 정리해줘야 하는 상황이 계속될 분위기다. 암울한 건 ‘신(新)윤핵관’으로 불리는 여당 초선의원들이다. ‘윤심’에 따라 중진들을 공격하는 지경이다. 소장파가 권력 핵심을 공격하는 호기로운 풍경은 사라졌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불신이 임계점에 이르면 정계개편 움직임이 꿈틀댈 수 있다. 그럴 경우 국민의 회초리를 구실로 여당의 재구성이 추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