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꼬부부도 해병대 출신도... 추석 앞두고 참변에 눈물바다

입력
2022.09.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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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 차량 옮기러 주차장 내려갔다 참변
차 다시 보고 오겠다던 해병대 출신 20대도 
70대 베트남전 참전용사도 숨진 채 발견

"두 분 모두 열심히 살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7일 오전 10시 30분쯤 경북 포항시 용흥동 경북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망자 남모(71)씨와 권모(65)씨 부부의 안사돈은 두 사람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황망해했다.

남씨 부부는 전날 포항시 인덕동 W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침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날 오전 장례식장 안내 화면에는 부부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잉꼬부부로 소문난 남씨 부부의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에 장례식장을 찾은 자녀와 친인척들은 애통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굴착기 운전을 업으로 삼았던 남씨는 아들과 딸을 모두 출가시키고 주변에 봉사활동까지 할 정도로 좋은 이웃이었다. 남씨 부부의 안사돈은 "얼마나 서로를 소중히 여겼으면 그 험한 곳을 새벽에 같이 갔겠느냐"고 땅을 쳤다.

포항 W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사고로 숨진 사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는 하루종일 착잡하고 비통한 분위기가 흘렀다. 추석을 목전에 두고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설렜던 이들의 바람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수마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해병대를 갓 제대한 건장한 청년도 갑작스러운 화를 피하지 못했다. 올해 4월 해병대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서모(22)씨는 지하주차장에서 대피 도중 변을 당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서씨의 한 유족은 "서씨가 아버지와 같이 주차장에 갔다가 '차를 다시 한 번 보고 오겠다'고 들어간 게 마지막이 됐다고 들었다"면서 "키가 180㎝가 넘는 서씨는 해병대 출신이라 헤엄쳐 나오길 기대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서씨 아버지는 사고 직후부터 서씨가 발견된 이날 오전까지 아들을 찾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하루종일 돌아다녔던 것으로 알려져 주변을 더 안타깝게 했다.

사고 희생자 중에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국가유공자도 있었다. 7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W아파트 바로 옆의 2차 단지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안모(75)씨는 20년 된 자신의 차량을 옮기기 위해 주차장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안씨 유족은 "워낙 검소하고 자기관리가 확실한 분이라, 오래된 차량이지만 새 차 다루듯 했다"며 "이번 사고도 평소 그런 모습을 이어가다가 발생한 일 같다"고 애통해했다.

사고 현장에 함께 있다가 갑자기 부인을 잃은 남편의 모습도 보였다. 이번 사고 희생자인 허모(55)씨는 전날 오전 7시쯤 안내 방송을 듣고 차량을 이동시키기 위해 주차장에 갔다가 화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허씨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남편 박모씨는 "여보 어서 나와"가 마지막 말이 됐다고 했다. 전날 인천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 찾아온 허씨의 딸은 "(엄마가) 보고 싶으니까 추석에 내려오라고 했는데 일이 있어 가지 못한다고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허씨는 전날 사고 직후 소방 당국이 파악한 7명의 실종자 명단에서 빠져 있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20년 전부터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 홍모(52)씨 빈소에서도 70대 노모와 40대 여동생의 애통함이 새어 나왔다.


포항= 류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