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열이 날까 봐 시간마다 체온을 잽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춘천에는 대학병원이 2곳이나 있지만 백혈병을 치료하는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없어서 서울로 치료받으러 다닙니다. 아이가 미열만 나도 서울로 가야 해요.”(소아청소년암 보호자 A)
“둘째인 7살 배기 아이 입에서 ‘외롭다. 슬프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이 자꾸 나오더라고요. 첫째 아이가 장거리 환자여서 저희가 한 달에 3주를 타지에서 있다 보니 둘째 아이가 성격이 조금씩 우울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항상 ‘슬프다’고 말하고요.”(소아청소년암 보호자 B)
6일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 따르면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아청소년암 환자의 절반 이상이 대부분 거주 지역을 떠나 서울·경기 등 다른 지역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그 비율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특히 강원도와 경북도는 소아암 전문의가 한 명도 없고, 충북ㆍ광주ㆍ제주ㆍ울산은 각각 1명 뿐이어서 입원 치료가 불가능하다. 울산광역시의 경우 은퇴한 교수 1명이 외래 진료만 하고 있다. 또 4~5명이 있는 지역도 병원별로는 1~2명에 불과한 인원이 근무하고 있어 항암 치료 도중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는 지방 병원에서는 1~2명의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주말도 없이 매일 입원 환자와 외래 환자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는 “중증 진료 환자를 받을수록 적자인 우리나라 의료보험수가(酬價) 구조와 소아청소년암 진료에 대한 국가 지원이 전무한 현실에서는 어느 병원도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를 추가로 고용하지 않으려 한다”며 “하지만 어떤 의사도 주말도 없이 혼자서 중증 환자 진료를 책임질 수는 없다”고 했다.
현재 국내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67명(평균 연령 50.2세)에 불과하다. 이들 중 절반가량은 10년 안에 은퇴한다. 최근 5년 간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충원이 2.4명에 그쳐 10년 지나면 소아혈액종양 진료 공백이 우려된다.
현재 국내 소아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80%로, 국제 수준(85%)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중증도가 높아 치료하기 쉽지 않다. 암세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면역을 담당하는 몸속 다른 세포와 장기까지 손상돼 면역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특히 몸이 열이 나면 패혈증 같은 중증 감염으로 악화할 수 있어 가능한 한 빨리 입원해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소아응급실이 문을 닫아 열이 나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찾다가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중증 패혈증으로 악화돼 중환자실로 가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고 있다.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국내 소아청소년암 완치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소아청소년암은 ‘암 정책’ ‘소아청소년과 질환’ ‘희소 질환’ 그 어느 것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깍두기 신세”라며 “치료 기간이 2~3년 정도 걸리는데, 그동안 가족은 치료비와 주거비 등 경제적 부담에 시달리고 가족이 붕괴되는 경우도 많이 본다”고 했다.
환자 치료에 필요한 시설·인력 등 열악한 의료 인프라가 개선되지 않으면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어 소아청소년암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고, 소아청소년암 생존율은 점차 낮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는 “소아청소년암 환자는 성인암 환자에 비해 매우 적지만 조혈모 세포 이식,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면역 치료, 뇌 수술, 소아암 제거 수술 등 치료 강도나 환자 중증도는 오히려 성인암보다 높은 편”이라며 “특히 대부분이 입원 치료가 필요해 365일 24시간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의가 병원별로 최소 2~3명 이상 필요하다”고 했다.
학회는 이어 “저출산 시기 출산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태어난 소중한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소아청소년암 치료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3월 ‘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제4차 암관리종합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