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기상천외한 소비 괴짜들만이 모인 사무실이 있습니다. 커다란 백팩에 빈티지 카메라를 네 개씩이나 넣어 다니는 K씨는 약과에 불과해요. 그 옆자리에 앉은 B씨는 막걸리 호리병, 접이식 전통부채 같은 해괴한 물건을 밥 먹듯 사들이는 자타공인 ‘소상공인의 희망’입니다. ‘양치 요정’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대표님 M씨는 개당 1만5,000원이 넘는 이탈리아산 치약을 턱턱 사들여요. ‘올해의 칫솔’을 찾는 게 그의 이상한 취미죠. H씨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데엔 ‘금융 치료’만 한 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의 책상 위로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최신형 노트북과 출시되지도 않은 신상 휴대폰이 즐비하게 굴러다니죠. 이곳은 리뷰 미디어 스타트업 ‘디에디트’의 사무실입니다.
아직 뜯지도 못한 택배 박스가 산을 이룬, 여긴 일명 ‘소비 다양성 연구소’라 할 수 있어요. ‘당신의 소비에 가성비 말고 개성과 소신을 허락하라’는 신념을 가진 연구원들이 쉬지 않고 재미있는 실험을 벌입니다.
이곳을 이끄는 주역은 유튜브계의 ‘다비치’라 불리는 두 명의 여성 콤비인데요. ‘아이폰이냐 갤럭시냐’, ‘그램이냐 맥북이냐’를 두고 고민해본 적 있다면 이들의 영상을 한 번쯤 보셨을 거예요. 짙은 선글라스를 수퍼 히어로의 코스튬처럼 착용한 여자 둘이 카랑카랑한 입담으로 신상 기기들을 리뷰합니다. IT 매체 기자 출신이라 해박한 지식은 기본, 자신만의 주관적 경험을 조미료 치듯 적재적소에 섞어 넣죠. 각각 에디터 H, 에디터 M, 일명 ‘H&M’이라 불리는 이들은 ‘디에디트’의 공동창업자 하경화(37) 에디터, 이혜민(35) 대표입니다.
디에디트의 유튜브 구독자는 60만 명에 이릅니다. 그래서 이 둘을 ‘유튜버’로 착각하곤 하는데요. 유튜브 채널은 디에디트 브랜드의 ‘부분 집합’일 뿐입니다. 이들의 정체성 핵심은 ‘웹 매거진’. 배너 광고 하나 없이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하는 웹사이트엔 6년째 매일 새 기사가 업데이트되고 있죠. 테크(Tech) 리뷰 사이트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공간, 음악, 영화, 책, 헬스, 여행 분야까지 커버하는 ‘종합 매거진’으로 외연을 넓혔어요. 조향사, 영화 평론가, 커피 전문가, IT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필진이 취향의 세계를 활짝 열어 보여줍니다.
특이한 점은 모든 기사가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거예요. 파워 블로거나 인플루언서의 포스팅처럼, 디에디트의 기사엔 하나같이 개인의 주관과 경험이 전면에 드러나 있습니다. 요즘 콘텐츠 업계에선 ‘대세’가 된 스타일이지만, 두 사람이 창업할 때만 해도 업계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고 해요. 매체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철저히 자기 정체성을 숨겨야 했죠. 그게 매체의 권위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모두가 믿었습니다. 반면, 디에디트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콘텐츠 문법을 6년째 고집해왔고요.
이들은 국내 뉴미디어 업계에서 드물게 살아남은 작지만 강한 플레이어입니다. 현상 유지하기에도 버거운 변화무쌍한 필드에서, 쉬지 않고 일을 벌이며 생존해왔죠. ‘해외 한 달 살기’가 유행하던 무렵엔, 직원 5명 전원을 데리고 유럽의 시골 마을로 떠나는 ‘디지털 노마드’ 모험을 벌였고요. 페이스북 정책이 바뀌며 모든 미디어가 패닉에 빠졌을 땐, 버티컬 뉴스레터 ‘까탈로그’로 위기를 타파했습니다. 지난해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머니사이드업’을 출시했어요. 홍대 한복판에 팝업 스토어를 열고, 고객 수만 명을 맞았죠. 지난 6월 ‘창업 6주년 기념 파티’ 현장에선 뙤약볕 아래 200명을 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게 직원 7명으로 이뤄진 작은 팀이 벌인 일입니다.
뉴미디어 업계에서 독보적인 디에디트의 두 콤비를 지난달 1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디에디트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콘텐츠 가내 수공업’으로 출발해 ‘브랜드’로 거듭난 그들만의 추진력에 대해 물었습니다.
2016년, 한 책상에 앉아 일하던 선후배는 나란히 퇴사했습니다. 당시 경화씨가 서른하나, 혜민씨가 스물아홉이었죠. 서른 언저리 젊은 무직자 둘은 백주대낮의 카페에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합니다. 들어가고 싶은 회사가 없으니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보자며 머리를 맞댔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백수가 된 지금이야말로 기회다’ 싶었다고 해요. 일 욕심으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 둘에겐 비슷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내 것을 만들고 싶다’
원칙은 간단했습니다. 첫째도 둘째도 ‘우리 마음에 쏙 들게’. 비즈니스보단 ‘자아실현’이 목적이었습니다. 일단, 두 사람의 뜻은 이랬습니다. “우리 둘 다 못생긴 건 못 참아. 그런데 국내 매체 웹사이트는 하나같이 못생겼지. 매거진의 세련된 미감을 디지털로 옮겨와 보자.” 밑천은 각자의 노트북 한 대씩이 전부였죠. 퇴직금을 헐어 만든 초기 자본금은 500만 원, 창업 자금이라기엔 귀여운 수준이었습니다.
“기사 쓸 땐, ‘옆집 언니’ 시점을 취했어요. 전문 매체보다는 쉽고, 블로그나 SNS보다는 전문적인 ‘중간 지대’를 점하고 싶었죠. ‘안녕? 나는 누구누구야’로 시작하는 구어체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당시엔 사람들이 다 이상하다고 했어요. 매체에서 기자 이름 달고 기사 쓰던 애들이 갑자기 자기들을 ‘에디터’라고 칭하질 않나, 말도 안 되는 구어체에 반말을 쓰질 않나. 그때만 해도, 리뷰어가 주관을 드러내면 신뢰가 떨어진다는 말이 많았거든요. 디자인이나 사진에 공들이는 걸 ‘겉멋 들었다’고 보는 시선도 있었죠. 근데 신경 안 썼고요. 결국 다~ 저희가 하고 싶은 대로 했죠. (웃음)” (에디터 H, 하경화)
망해도 괜찮으니 ‘내 맘에 들게’ 만드는 게 먼저였거든요. 일단은 ‘맵시’가 중요했어요. ‘겉멋이면 어떠랴, 예쁜 떡이어야 눈길이라도 한 번 더 받는다’는 생각이었죠. 웹사이트 만들 땐, 배너 광고를 모두 포기하고 오직 이미지와 헤드라인이 크게 드러나는 깔끔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을 선택했어요. 리뷰 기사에 들어가는 제품 사진은 통일된 미감을 위해 모두 직접 찍었죠. 필요하다면 고가의 조명과 스튜디오를 빌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고요.
‘옆집 언니’ 자아를 전면에 내세웠으니, ‘읽는 재미’를 위해 필요하다면 헤어진 연인과의 에피소드도 끌어다 썼습니다. 자신의 일상을 밑천 삼아 야금야금 기사에 팔았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리뷰할 때는 출근길 지옥철에서 즐기는 황홀한 탈출에 대해 이야기했고, 맥주를 추천할 때는 금요일 밤 혼술을 즐길 수 있는 여유에 대해 말했습니다. 돈깨나 써본 언니에게서 듣는 ‘소비특강’ 같았어요. '어떤 소비는 그저 통장을 텅텅 비우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당신의 일상에 결정적인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죠. 누군가는 ‘왜 기사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냐’며, ‘여기가 네 일기장이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우리 맘에 들었잖아? 그럼 된 거야!’
“‘이걸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고민에 매몰되면 안 되는 거 같아요. 생각이 많아지면 반드시 꼬여요. 콘텐츠 만들 때 원칙은 일단 ‘만드는 사람이 재미있고 즐거워야 한다’에요. 처음부터 고민이 너무 많으면 영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우린 기세 좋게 달려나갔어요. 원하는 대로 했죠. 맞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꾸준히 믿었고요.” (에디터 M, 이혜민)
앞뒤 재지 않고 소신에 따라 만든 자아실현용 콘텐츠들은 눈 밝은 독자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돈 벌 생각을 버렸더니 오히려 비즈니스의 가능성이 열렸어요.
일을 놓을 순 없으니 딱 한 달만, 사무실을 통째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노트북과 카메라를 바리바리 챙겨 포르투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죠. 이름하여 <어차피 일할 거라면> 프로젝트. 새벽 3시까지 핏발 선 눈으로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과로의 늪에서 도망치려 떠났지만, 워커홀릭 DNA가 어디 가나요. 유럽의 소도시에서 즐기는 ‘한 달 살기’의 여유와 낭만 같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멋진 풍경 안에 있으니 근사한 그림을 남겨야 한다’는 조바심이 여유를 집어삼켰죠. 19세기에 지어진 유럽의 고택에서 와이파이와 씨름하며 여전히 ‘소’처럼 일했어요. 하지만 모두가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전력 질주하는 대도시를 벗어나니 그제야 용기가 생겼습니다.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가면처럼 둘렀던 짙은 선글라스를 내려놓았죠.
“포르투에서 한 달을 살아보니,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한국에서, 30대 여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요.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면 새로운 창구가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디에디트 라이프’ 채널을 만든 거죠. 이미 지쳐 있는 상태에서 일을 또 벌인 건데, 새롭게 벌인 일이 정체돼 있던 우리의 일에 변곡점을 만들고, 돌파구가 됐어요.” (에디터 M, 이혜민)
‘디에디트 라이프’ 채널엔 말 그대로 두 사람의 ‘라이프’, 즉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의 갑옷을 벗고 민낯과 맨살을 보여주듯 솔직한 고민을 담았죠. 결혼에 대한 생각, 혼자 사는 삶의 즐거움과 고충, 일에서 느끼는 불안과 조바심, 외모 콤플렉스와 자존감 등 내밀한 주제들을 재료로 삼았어요. 혜민씨의 좌충우돌 ‘독립 스토리’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서울에 내 방 하나’ 찾기 힘든 현실에 좌절하고, 억대의 돈이 오가는 전세 계약에 마음을 졸이며, 투 룸짜리 작은 집을 한 땀 한 땀 고심하며 채워나가는 과정을 ‘M 혼자 살아보겠습니다’라는 시리즈 영상물로 풀어냈죠.
'사람들이 댓글에 맨날 묻잖아. 왜 결혼 안 하느냐고. 근데 나한테 결혼은 족발 같은 거야. 나는 족발을 안 먹거든? 먹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고, 평생 안 먹고 살아도 상관없는 것. 그런데 가끔은 조바심이 들기도 해. 결혼하지 않고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혼자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너무 적으니까.’ (에디터 H, ‘디에디트 라이프’ 채널 영상 중에서)
이때를 계기로 디에디트만의 ‘매너리즘 대처법’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지쳤다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멈출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하던 것과 다른 일을 벌여야 한다.’ 그래서 매년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었어요. 2019년엔 전 직원을 데리고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두 번째 ‘한 달 살기’ 프로젝트를 떠났습니다. 2020년엔 뉴스레터 ‘까탈로그’를 론칭했고, 2021년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머니사이드업’을 출범시켰죠.
뉴스레터 ‘까탈로그’를 만들 때에는 이름 공모만 두 달을 받았습니다. 픽셀 아트를 활용한 ‘레트로’ 느낌의 디자인을 선택해 기존의 디에디트 이미지와 다른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했죠. 자고 일어나면 유행이 바뀌고, 매일 더 젊은 감성으로 무장한 크리에이터들이 밀물처럼 쏟아지는 이 업계에서는 ‘낡아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생존의 핵심 키(key)거든요. “기왕 뉴스레터를 만든다면 완전히 참신하게 해보고 싶었어요. 디에디트는 멈춰 있지 않다. 계속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필해야 했거든요. 현상 유지만 하려면 도태되기 십상이에요. 뒤처지거나 정체되지 않으려면 계속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죠.” (에디터 H, 하경화) ‘고인 물’이 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물을 끊임없이 붓는 것이야말로 디에디트가 정체성을 ‘지키는 방법’이었던 거죠.
“디에디트의 슬로건이 ‘사는(live) 재미가 없으면 사는(buy) 재미라도’잖아요? 5년 동안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 저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하나의 ‘물성’을 가진 경험으로 소비자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건도 사실은 콘텐츠거든요. 만질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거니까. 그렇게 ‘머니 사이드업’을 만들게 됐죠.” (에디터 M, 이혜민)
‘머니 사이드업’은 티셔츠나 후드티, 모자와 양말, 휴대폰 케이스 등 패션 상품을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예요. 그러나 단순히 디에디트의 팬들을 위한 ‘굿즈’를 만드는 개념은 아닙니다. ‘새로운 화두에는 새로운 마이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만든 독립적인 프로젝트죠. 디에디트가 ‘멋진 소비’에 대해 말하는 매체라면, 머니사이드업은 ‘각자가 생각하는 부자(rich)의 기준’에 대해 묻는 브랜드거든요. ‘I want you to be rich(난 네가 부자가 됐음 좋겠어)’라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걸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디에디트’라는 이름에 지나치게 귀속되지 않았으면 해요. 저희가 지금까지 구축한 약 70만 명의 구독자를 넘어서, 각각의 브랜드들이 자기만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저변을 키워나갔으면 좋겠어요.” (에디터 H, 하경화)
‘디에디트’의 기시감을 지우고 새로운 얼굴로 출발한 까탈로그는 2년 만에 11만 명의 구독자를 독자적으로 모았고, 머니사이드업은 홍대 한복판에 ‘놀이동산 콘셉트’의 팝업 스토어를 열어 구독자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났습니다. 두 브랜드가 나란히 유튜브가 아닌 다른 영토에 또 새로운 ‘깃발’을 꽂은 겁니다.
경화씨와 혜민씨가 구독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친구끼리 동업하면 무엇이 좋은가요?”라고 해요. 영상에서 유독 ‘티키타카’가 잘 맞는 두 사람을 ‘동갑내기 친구’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 거죠. 하지만 둘은 친구가 아니라 ‘일로 만난 사이’예요. 직장에서 선후배로 만나 꽤 오랜 시간 합을 맞춰 일해왔죠. 일하는 속도부터, 일을 처리하는 방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 거슬리는 부분’ 없이 잘 맞았다고 해요. 인생의 동반자만큼 제대로 구하기 힘든 게 ‘동업자’라는 데, 이 두 사람은 ‘함께 일하는 팀’으로서 동질감과 신뢰를 오랜 시간 쌓아온 거죠. 구독자의 질문엔 이렇게 대답하곤 한대요. “친구끼리 절~대 동업하지 마세요! 진심입니다! 아니, 우린 친구가 아니었다니까?”
‘롱런’하는 동업의 비결로 두 사람이 함께 꼽는 것은 첫째, ‘일에 대한 가치관이 같다’는 사실이에요. 좋은 성과를 내는 똑같은 ‘일잘러’라도 과정 지향형 일잘러와 결과 중심적 일잘러는 한 팀에 있으면 서로에게 독이 되거든요. 혜민씨와 경화씨의 경우, 모두 ‘결과 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진 일잘러죠.
“일할 때, 준비와 계획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분들은 과정과 절차를 꼼꼼하게 밟아야 해요. 하나하나 납득될 때까지 공부하며 차근차근 결과를 향해 걸어 나가죠. 반면 저나 경화 선배는 목표가 생기면 들입다 달려들어요. 아마 과정을 중시하는 분들은 저희를 보면서 ‘왜 저렇게 일을 준비 없이 대충해?’라고 생각할 거예요. 반면 저희는 그분들을 보며 ‘일을 왜 저렇게 답답하고 느리게 해?’라고 생각하죠. 일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이 두 부류가 한 팀에서 서로의 방식을 강요한다면 폭력이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에디터 M, 이혜민)
두 번째 비결은 ‘일하는 속도가 비슷하다’는 겁니다. 동업 관계가 깨지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가 ‘내가 상대보다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일을 처리하는 속도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하면, 일을 빠르게 하는 쪽은 필연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죠.
“저희는 일종의 ‘페이스 메이커’예요. 저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뛰고 있는데 옆을 쳐다보면 혜민이 역시 죽어라 비슷한 속도로 뛰고 있는 거죠. 너도 그렇단 말야? 그럼 나도? 이러면서 같이 피치를 올려요. 도무지 슬로 다운(slow down)할 줄 모르고 그냥 냅다 빨라지기만 하는 것 같아 문제긴 한데… 그게 저희의 중요한 동력이자, 유지 기반이 되는 것 같아요.” (에디터 H, 하경화)
때로는 ‘다른 점’이 동업 관계의 결정적인 강점이 되기도 합니다. 두 사람을 나란히 놓고 보면 성격이나 품성 자체는 정반대거든요. 그게 서로의 약점을 절묘하게 보완해줍니다. 섬세한 경화씨는 모든 콘텐츠에 달리는 댓글을 하나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읽어보고 성심껏 관리하는데요. 그만큼 악의적인 피드백에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반면 무던한 성격의 혜민씨는 불필요한 피드백은 과감하게 쳐내버리는 스타일이라고 해요. 경화씨가 작은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별일 아니다’라며 다독여주는 역할을 하죠. 한편 경화씨는 특유의 예민함으로 문제가 될 만한 위험 상황을 미리 인지하고 발 빠르게 대처해요. 한 사람의 예리한 감수성과 다른 한 사람의 무딘 평정심이 서로 보완하며 각자의 쓸모를 다하고 있는 거죠.
“무엇보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기 때문에, 각자의 고민이 곪아버리기 전에 서로에게 꺼내놓고 이야기를 해요. 악플이란 게, 보는 순간엔 무시할 수 있다 해도 무의식중엔 야금야금 쌓일 수밖에 없거든요. 혼자 곱씹으며 소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위험해지고요. 저희는 위기감이 느껴질 때마다 다른 한쪽에게 도움을 요청해요. 꺼내놓고 이야기를 하는 순간부터 괜찮아지더라고요.” (에디터 M, 이혜민)
단단한 신뢰는 5명의 직원을 대할 때에도 중요한 자원이에요. 다만 ‘우리가 남이가!’ 하는 끈적끈적한 의리가 아니라, ‘다소간 건조하게 유지되는 신뢰’라는 게 중요합니다. ‘완전히 믿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죠. 일단 콘텐츠의 데드라인만 정해지면,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합니다. 보고나 결재를 받는 일 없이 각자가 맡은 일을 독자적으로, 또 자율적으로 처리하죠.
그도 그럴 것이, 디에디트는 경화씨와 혜민씨를 포함해 에디터가 3명, PD가 2명, 머니사이드업 직원이 2명, 총 7명으로 이뤄진 작은 팀이에요. 사람 수는 이렇게 적은데 일주일 기준 5편 이상의 기사, 4, 5편의 영상, 1편의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으니 사실상 모두가 마감에 시달리며 ‘일당백’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직원 전원을 소집해 회의를 하기보단 상의가 필요한 사람들끼리 그때그때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방향을 만들어 나갑니다. 공유해야 할 목표만 제시하고, 직원들 각자가 가진 역량과 열의를 믿고 완전히 ‘일임’하는 것이 적은 인원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네요.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전체 회의’는 자주 하지 않는 대신, 단톡방 하나만큼은 매일 화력이 폭발하는 뜨거운 불판이라고 해요. 팀원들 모두가 각자 다른 분야에서 ‘소비왕’이다 보니, 매일매일 새로운 트렌드 소식과 콘텐츠 아이디어를 쏟아내죠.
“우리 팀은 정말이지 끼리끼리 모였어요. 다들 극도로 소비지향적 인간들이거든요. 유튜브에선 저랑 에디터 H가 ‘쇼핑이 직업인 큰손 언니들’로 보이지만, 저희 직원들에 비하면 제일 안 사는 편이에요. 직원 전원이 젊은 데다 다들 유행에 빠른 친구들이다 보니, 콘텐츠를 구상할 때 항상 이 친구들을 ‘표본집단’으로 잡아요. 단톡방에 링크 하나 던져보고, ‘얘들아, 요즘 이런 거 어때?’라고 물어보면 독자의 반응을 1차로 테스트할 수 있죠. ‘식상한데요’가 나오면 바로 킬(kill)이고 ‘오, 괜찮은데요?’가 나오면 발전을 시켜보는 식이죠. 단톡방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템을 던져보면서 각자가 아는 것들을 끌어모아 살을 붙이죠.” (에디터 M, 이혜민)
◆디에디트만의 콘텐츠 기획 비법은 속편 기사 일잼포인트에서 이어집니다.
두 사람이 보낸 지난 6년은, 매일매일이 일주일을 꾹 쥐어짜 하루에 압축한 듯한 날들의 연속이었다고 해요. 몸은 하나인데, 매년 프로젝트는 하나씩 추가됐죠. 습관처럼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처지였지만, ‘정말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눈코 뜰 새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죠. 두 사람은 매일 새벽 사무실에 남아 몰아닥치는 업무의 해일 안에서 표류했습니다. 누군가는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마주 보며 물었습니다. ‘그러게, 우린 왜 이렇게 죽을 둥 살 둥 바쁘게 일하며 사는 걸까.’
“되게 단순해요. 멋있게 살고 싶다, 근사하게 해내고 싶다는 마음. 그런데 그 마음 뒤에는 항상 그림자처럼 ‘도태되고 싶지 않다’는 조바심이 깔려 있는 거죠. 어제까지가 나의 전성기였던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제일 커요. 이미 정점을 찍었고 눈앞에 남은 건 내리막이기만 하다면 얼마나 슬플까요. 그래서 자꾸 새롭게 어딘가에 오르려 해요. 제가 추구하는 ‘멋짐’이 어제의 내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오늘’의 이야기였으면 좋겠어요.” (에디터 H, 하경화)
모두가 미친 속도로 달리는 이 도시 서울에서, ‘멋지다’는 찬사의 의미는 변화무쌍하게 바뀝니다. 어제는 멋졌던 것이 오늘은 ‘낡은 것’이 되기도 하고, 오늘 멋졌던 것이 내일은 ‘촌스러운 것’이 되기도 하죠.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가장 최신의 멋짐’을 점할 수 있는 원동력은 역설적이게도 ‘불안함’에서 나왔다고 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가라앉고 잊힐까 봐’ 계속 달려왔죠. 스스로 자신의 오르막을 ‘경신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오르막 위에서 본 세상은 매번 다르게 황홀한 풍경을 보여줬어요. 그래서 이들에게 ‘불안’이란 곧 짜릿함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이 불안함이 우리를 또 어디로 데려다 놓을까’ 자꾸 기대하게 만드는.
6년의 행군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두 다리의 단단한 근육으로, 이들은 오늘도 ‘사서 만든 고생길’인 오르막을 등반합니다. 뜨거울 줄 알면서도 빛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두 사람에게 ‘일의 재미’에 대해 물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패션 잡지를 종류별로 다 구독해 봤어요. 보그, 지큐, 쎄시, 마리끌레르… 잡지사에 들어갔을 때 첫 월급이 30만 원이었는데도 출근하는 길이 그저 행복했어요. 제가 쏟아부은 시간과 열의가 매 달 한 권의 책으로 나온다는 사실이 너무나 멋졌어요. '아마 나는 평생 이런 일을 하며 살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세상에 수많은 직업이 있지만, 이 일보다 짜릿한 일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빼곡히 내 인장이 묻어 있는 뭔가를 세상에 내놓는 일.” (에디터 M, 이혜민)
“고등학생 때 PC통신에 소설을 연재했어요. ‘다음 편을 빨리 가져와 달라’며 애태우는 댓글들을 볼 때마다 마약 같은 도파민이 분비됐던 거 같아요. 평생 그 감각을 좇으며 살고 있는 거 같아요. 이 일을 하면 항상 제가 무대에 서 있다는 감각을 느껴요. 이보다 더 강한 자극이 없을 것 같은 짜릿한 감각을요. 저 역시 평생 이 느낌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예요. ” (에디터 H, 하경화)
▶ 디에디트의 일잼포인트 '찐팬을 끌어당기는 콘텐츠 기획법' 읽으러 가기 (관련기사 ②)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90615430002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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