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미루지 못하고 이 글을 써야만 하는 시점이 다가올 때쯤이면 집권 여당이 겪는 내홍이 어느 정도 정리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가 윤리위원회의 징계를 통해 대표직에서 축출되고 2개월 가까이 흘렀지만, 어떤 지도부가 어떻게 국민의힘을 이끌어나갈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결과가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정당의 지도부 선출에 사법부가 개입하고 또 정당은 사법부의 결정을 우회하기 위한 꼼수를 모색하는 등 한국 정당의 부끄러운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다시 이 글을 쓰고 있다.
솔직히 이준석 대표의 징계나 이후 비대위 구성이 정당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필자는 정당이 진로를 결정하는 데 사법부가 개입했다는 - 혹은 개입할 여지를 정당 스스로 제공했다는 - 사실 자체에 당혹감을 느끼는 편에 가깝다. 여당이 이준석의 길을 따를지 아니면 윤핵관의 길을 갈지, 혹은 또 다른 길을 모색할지는 전적으로 국민의힘이 결정하고 책임질 일이다. 많은 이들이 비대위의 절차적 정당성을 두고 왈가왈부하지만, 이는 핵심이 아니다. 오히려 일련의 사태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은 현재까지의 상황을 누가 주도했는가라고 생각한다.
모든 정당은 당연하다는 듯이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라고 이야기한다. 선관위 통계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 수는 공식적으로 350만 명 가까이 된다. 그렇다면 새로운 정권을 창출한 후 5년간 집권 여당으로서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당원이 직접 선출한 대표의 직위를 사실상 박탈하는 결정은 9명으로 구성된 윤리위원회가 내렸으며, 징계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로의 전환은 서너 명의 최고위원이 사퇴함으로써 촉발되었다. 두 번에 걸친 비대위 수립은 국민의힘 소속 선출직 공직자들이 주도하는 의원총회와 상임전국위원회 결정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들 목소리를 들은 기억은 없다. 물론 각각의 순간에 국민의힘이 내린 결정이 실제로 당원과 지지자가 원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들리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다.
물론 당원은 선거 승리를 위한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소수의 선거전문가와 선출직들이 정당을 좌지우지하게 된 것은 새로운 일도 국민의힘만의 일도 아니다. 정당이 명확한 노선과 정체성보다는 이미지를 내세워 중도층 포섭에 치중하는, 결과적으로 당원과 일반 유권자 사이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공직 후보자로 나설 지도부에 권한이 집중되는 현상은 이른바 '포괄정당'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핵심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일 뿐, 집권 이후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정당의 뿌리가 되어야 할 당원의 역할이 애매하니, 방향은 불분명하고 남는 것은 자리다툼뿐이다.
당연하게도 정당의 운영 과정 하나하나를 매번 당원의 의사를 물어 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당내의 위계적 의사결정 절차는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정당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당원의 의사를 물어보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정당의 자율적 결정에 사법부가 개입할 수 있느냐"는 반발이 작은 공감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