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주머니로 태풍 '힌남노'에 맞선 사람들

입력
2022.09.06 21:00





초강력 태풍 '힌남노'의 피해 규모는 각오했던 것보다 적었다. 태풍의 위력은 '역대급'이었으나 한반도를 지나는 속도가 빨랐던 덕분에 대규모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지자체와 주민들이 과거 태풍으로 얻은 교훈을 잊지 않고 철저히 대비한 점도 큰 몫을 했다.

힌남노 상륙 하루 전인 5일, 울산 태화시장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상습 침수지역인 태화시장은 2016년 10월 태풍 '차바'가 쏟아부은 물폭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당시 점포 300여 개가 물에 잠기며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고, 지난 해 태풍 '오마이스' 때도 침수 피해를 겪었다.

이날 영업을 일찍 끝낸 상인들은 미리 준비한 모래주머니로 '수제' 차수벽을 만들었다. 모래주머니 여러 개를 문 틈이나 점포 앞에 쌓아 물이 점포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정식 차수벽처럼 정교하진 않지만, 비닐까지 덮어주면 나름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울산시는 태화시장에 모래주머니 1,000여 개와 대형 양수기 4대를 사전 배치했다.




20여 년 전 역대급 태풍 '매미'로 직격탄은 맞은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벌어졌다. 마산어시장 주변 해안을 따라 높이 2m짜리 대형 차수벽이 둘러쳐졌고, 인근 구항배수펌프장에서는 모래주머니를 직접 만드는 주민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 인근 상인들도 태풍 힌남노에 맞서기 위해 두 팔을 걷어 붙였다. 마린시티가 위치한 해운대 청사포는 태풍으로 인한 상습 월파 피해 지역이다. 2016년 태풍 '차바'가 일으킨 엄청난 크기의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이닥치기도 했다. 당시 주차돼 있던 차량들이 파도에 밀려 화단으로 올라가거나 상가 유리창이 파손되는 등 피해가 컸다.

이날 상인들은 지게차를 동원해 1t짜리 콘크리트 덩어리로 강력한 차수벽을 만들었다. 방파제 인근에 세워둔 콘크리트 행렬은 방파제를 넘어 온 파도를 막는 2차 저지선이었다. 점포 침수와 파손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 차수벽을 점포 앞에 늘어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힌남노의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만반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해안가에 위치한 점포 중 상당수가 창문이 깨지고 내부 집기까지 파손되는 피해를 입고 말았다. 성난 자연 앞에서 유리창에 꼼꼼히 붙여둔 테이프는 물론, 콘크리트 덩어리조차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상인들은 아수라장이 된 점포를 보며 한숨을 지어야 했다. 힌남노가 할퀸 상처는 또다시 찾아올 태풍에 맞설 소중한 경험으로 남게 됐다.





최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