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히 살아 있는데 실종선고 사망자라고?'
올해 2월 법복을 입은 오소영(28) 청주지검 검사는 지난 3월 경찰이 송치한 무면허 운전 사건 피의자 신원을 살펴보다가 눈을 의심했다. 서류에 분명히 13년 전에 이미 죽은 '사망자'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라는 당황스러움은 이내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란 의구심으로 바뀌었다. 오 검사가 피의자 A(53)씨를 살려 내기 위한 조사에 착수한 이유다.
A씨가 사망자로 기록된 사연은 기구했다. 1988년 집을 떠난 그는 야심차게 시작한 사업이 실패하면서 부모와 연락을 끊었다. 가족들은 A씨를 찾기 위해 실종 신고를 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결국 2009년 8월 법원이 실종선고 심판을 확정하면서 그는 자연스레 주민등록상 사망자로 처리됐다. 실종자 생사가 5년간 분명치 않을 경우 법원은 실종선고를 하도록 돼 있고, 이럴 경우 실종선고를 받은 사람은 사망한 것으로 간주된다.
A씨는 자신이 사망자가 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러나 주민등록을 회복하는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가 2009년부터 13년간 사망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당연히 A씨의 삶은 고단했다. 서류상 '없는 사람'이니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이었다.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도 없었다. 그는 오토바이 운전을 하며 일용직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사망자'로 간주된 그에겐 운전면허가 있을 리 없었고, 결국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단속에 적발됐다.
A씨가 잘못을 저지른 것은 분명했으나, 오 검사는 무면허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사정을 외면할 순 없었다. 단순 경범죄로 벌금 처분을 내리고 그대로 둔다면 A씨는 재차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탈 게 뻔했다. 오 검사는 재범 위험을 해소하고 A씨가 사회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묘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오 검사는 A씨를 약식기소하는 동시에, 법원에 실종선고 취소를 직접 청구하기로 했다. 법적으로 검사는 실종선고 취소를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오 검사는 A씨의 법원 실종선고 결정문을 확인하는 한편, 그의 생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지문조회로 동일인임을 밝히고 각종 유관기관에서 확보한 신원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오 검사의 노력 끝에 법원은 지난 7월 A씨의 실종선고 취소를 결정했다.
A씨는 지난달 22일 검찰 수사관과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임시신분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면허 취득은 물론 차상위계층 주거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A씨는 "검찰은 처벌만 하는 곳인 줄 알았다"며 "이제 저는 다시 살아난 거네요"라고 오 검사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오 검사는 5일 한국일보에 "검찰은 형법상 범죄를 처벌하는 권한 외에도, 민법상 공익을 위한 여러 권한을 부여받은 기관"이라며 "A씨가 사회안전망 안에서 살아가도록 도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오 검사는 "검사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며 "검찰의 공익적 역할이 좀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