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터넷 기업이 온라인 혐오 사이트를 차단했다. 표현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에선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표현의 자유보다 사람을 보호할 의무가 먼저"라는 이유에서였다.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는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가 제재를 받지 않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4일(현지시간) 미 CNN방송에 따르면 인터넷 서버·보안 서비스 제공업체 '클라우드플레어'는 온라인 커뮤니티 '키위팜스'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했다. 클라우드 플레어는 "최근 48시간 동안 특정인을 상대로 한 공격적인 글이 폭증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에 키위팜스 접속이 일시 차단됐다.
2013년 개설된 키위팜스는 집단 괴롭힘을 조장하는 '스토킹의 온상'으로 유명하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같은 약자를 목표 삼아 욕설과 살해 협박을 하는 것은 물론 물리적인 피해까지 입힌다. 이제까지 최소 3건의 자살이 키위팜스의 괴롭힘과 관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서버 차단 사태도 이용자들의 온라인 스토킹으로 촉발됐다. 가해자들은 캐나다인 게임 방송인 클라라 소렌티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6개월 넘게 괴롭혀왔다. "소렌티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그의 집 주소를 온라인에 올리고 소렌티를 허위 신고해 긴급 출동한 경찰에 집 수색을 당하도록 했다. 겁에 질린 소렌티는 영국으로 도망쳤지만, 스토커들은 이틀 만에 피난처를 알아내 또다시 주소를 공개했다.
클라우드플레어의 키위팜스 차단은 쉽지 않았다. 인터넷 기업은 콘텐츠를 차단·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망 중립성' 개념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측도 지난달까진 "논란에도 불구하고 차단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론은 '혐오' 커뮤니티를 그대로 두는 건 인터넷 기업의 책임 회피라고 압박했다. 미국에선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범죄를 부추겨 대형 사고로 이어진 사례가 여러 번 있다. 지난 5월 13명의 희생자를 낸 뉴욕주 버펄로의 총기난사범도 극우 음모론 사이트 포챈(4chan)의 이용자였다. 알렉스 스타모스 전 페이스북 최고보안책임자(CSO)는 "클라우드플레어의 현재 정책은 (사태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며 "해롭고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커뮤니티의 존재는 적절치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키위팜스가 영원히 사라진 건 아니다. 새로운 서버 제공업체를 구하면 돌아올 수도 있다. 2019년 클라우드플레어는 또 다른 혐오 사이트인 '에잇챈(8chan)'을 차단했는데, 에잇챈은 사라지는 대신 접근이 어려운 '다크웹'으로 숨어들었다. 소렌티는 "오늘의 성과를 축하하지만, 이게 키위팜스의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며 "앞으로도 함께 맞서 싸워야 한다"고 영구 폐쇄를 위한 운동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