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진화된 'n번방' 성착취물 범행, 정부는 뭐했나

입력
2022.09.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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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과 유사한 디지털 성범죄가 또 발생했다. 주동자 '엘'(가칭)과 공범들은 텔레그램상에서 피해자들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강제로 촬영하게 하고 해당 영상 350개 이상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확인된 피해자 6명 중 상당수는 10대 미성년자이며 초등생도 있다고 한다. 일당은 수시로 채팅방을 옮겨 감시망을 피하고, n번방 사건을 파헤쳤던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등 한층 악랄한 수법을 썼다. 3년 전 n번방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뒤 'n번방 방지법' 등 대응책 강화와 범인 처벌이 뒤따랐건만 더욱 진화된 범행을 목도하게 된 현실이 참담하다.

늑장 대응부터 정부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피해자는 올해 1월 일선 경찰서에 피해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신고 당사자 영상은 유포된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소극적으로 수사하다가 최근에야 지방경찰청 전담수사팀에 사건을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제도 정비에도 소홀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전국 3곳뿐인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늘리겠다고 공약했지만, 정작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관련 예산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지원센터가 이번 사건에서도 피해자 신고를 경찰에 연계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보다 앞서 법무부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응해왔던 디지털 성범죄 대응 업무를 지난 6월 TF 해산과 함께 통상 업무로 전환했는데, 이 또한 사건 대응 강화에 역행하는 조치다.

성착취물 범죄 온상이 되고 있는 텔레그램에 대한 수사상 한계도 속히 극복해야 한다. 텔레그램은 서버가 해외에 있고 수사 협조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 지난해 청소년성보호법을 고쳐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함정 수사'를 허용한 것이며, 필요하다면 수사 기법을 고도화할 추가 조치를 해야 한다. 아울러 국회와 법원은 성착취물 제작·유포는 물론 소지·시청 행위도 보다 엄단해야 한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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