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8일 전남 구례군에 물난리가 났다. 섬진강 둑이 터지고, 마을과 들판이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이틀간 쏟아진 집중 호우(400㎜)와 섬진강댐 관리 부실이 빚은 참사였다. 이재민 1,149명, 가축 피해 2만2,824마리, 주택 침수 711동의 피해가 집계됐다. 당시 구례군이 공식 집계한 피해액만 1,807억 원. 주민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물난리였다. 육이오(6·25전쟁)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역대 최악의 수해였다.
그로부터 2년 후. 수마가 할퀸 상처가 여전한 터에 주민들은 또다시 수해로 인해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경험하고 있다. 수해 뒷수습 당시 "구례군 공무원들이 재해 복구(수해 폐기물 처리) 목적으로 지급된 국고 보조금을 유용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이게 2년 만에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밝혀지면서다. 주민들은 김순호 구례군수 매제가 나랏돈을 빼먹고, 이런 부패 행위를 공익 신고한 청소노동자(환경미화원)들에게 김 군수가 되레 징계를 내렸다는 뒷얘기까지 접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하고 있다.
전남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2대는 최근 구례군 공무원 3명과 공무직 근로자 1명, 폐기물처리업자 2명, 상차(上車)대행업자 1명을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2년 전 수해 당시 발생한 재난폐기물과 생활폐기물 처리량을 조작하고, 관련 국고 보조금을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무원 3명에 대해 경찰은 "이들이 서로 짜고 2020년 12월 초부터 이듬해 6월 말까지 재난폐기물 처리 비용 명목으로 지급받은 국고 보조금을 빼돌려 생활·대형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썼다"고 했다. 이 중 공무원 A씨는 지난해 1~6월 업자들과 짜고 재난폐기물 계량 내역을 조작한 뒤 이를 근거로 국고 보조금을 거짓 신청해 빼돌렸다. A씨에겐 컴퓨터 등 사용 사기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무려 6개 혐의가 적용됐다.
그러나 경찰은 A씨 등이 실제 조작한 재난폐기물 처리량이 얼마인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다만 환경부가 지난해 말 구례군에 지급한 보조금(213억7,700만 원)을 정산·심사한 결과를 보면, 구례군이 생활폐기물을 재난폐기물로 바꿔치기한 양이 2,752.81톤, 여기에 쓰인 처리 비용(보조금)은 9억842만여 원에 달했다.
경찰 수사 결과 중 특히 주목을 끄는 대목은 김 군수 매제 B씨가 보조금 유용 범죄에 가담했다는 점이다. A씨와 친구 사이인 B씨는 수해 직후 쓰레기 상차대행업자로 선정돼 재난폐기물 임시적환장에서 굴삭기로 재난폐기물을 운반 차량에 실어주는 일을 했다. 경찰은 B씨가 지난해 1~2월 다른 업자들과 공모해 재난폐기물 운반·처리 과정에서 흙과 돌을 운반 차량에 실어 재난폐기물인 것처럼 허위 계량한 뒤 이를 근거로 보조금을 가로챈 혐의가 있다고 봤다.
김 군수 인척이 황당하게도 토석까지 재난폐기물로 둔갑시켜 나랏돈을 빼먹었다는 경찰 수사 결과가 알려지자 김 군수도 주민들의 입살에 오르내리고 있다. 더구나 경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은 직후인 지난달 중순 김 군수는 수해 폐기물 조작 의혹 등을 공익 신고한 환경미화원 2명을 징계하면서 "보복성 징계 아니냐"는 뒷말을 낳았다. 실제 김 군수는 환경미화원들이 정상적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동료들을 부추겨 조작된 수해 폐기물 처리 내역 등 내부 자료를 유출시켰다는 이유로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앞서 김 군수는 조직 비위를 들춰낸 환경미화원들을 색출한 뒤 경찰에 고발하고 인사 조치까지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김 군수가 인척과 비위 직원들 관리를 제대로 못한 데 대한 반성은 하지 않고 애잔한 환경미화원들에게 뒤끝을 부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정이 이쯤 되자 환경미화원들은 이달 초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자로서 보호 대책을 세워달라"며 신분 보장 조치를 신청했다. 한 환경미화원은 "공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며 공익 신고한 사람을 보호해야 할 김 군수가 오히려 지속적이고 집요한 보복 조치를 가해왔다"며 "이게 과연 군수가 할 짓이냐"고 직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