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가 소환한 악몽... 매미·루사의 기억

입력
2022.09.03 19:00



초강력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면서 20여년 전 악몽 같았던 슈퍼 태풍 '매미'와 '루사'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1 엄청난 위력의 바람 태풍 '매미'(2003년)

2003년 제14호 태풍 매미는 추석 연휴인 9월 12일 저녁 9시경 경남 고성군 앞바다로 상륙했다. 당시 최대풍속 49m/s에 중심 기압 954hPa(헥토파스칼)로 매우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던 매미는 상륙 직후 경남 마산시(현 창원시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 해안가부터 궤멸시켰다. 태풍의 초저기압에 의해 빨려 올라간 바닷물이 만조와 강풍을 만나면서 무려 높이 5m에 달하는 거대 해일을 몰고 온 것이다.

엄청난 해일로 인한 참사는 뜻밖에도 해안이 아닌 내륙에서 발생했다. 이날 밤 마산 서항 부두에 야적돼 있던 통나무들이 만조와 해일에 떠밀려 내륙으로 1.3km나 이동하면서 '해운플라자' 건물 지하통로까지 밀려 들어왔다. 당시 해운플라자 지하는 해일로 인해 순식간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떠밀려 들어온 통나무 여러 개가 지하 3층 노래방 입구를 막으면서 손님 8명이 탈출하지 못한 채 수몰되고 말았다. 당시 희생자들이 추석을 맞아 모임을 하던 일가족이나 결혼을 앞둔 연인들이었던 탓에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수출자유지역(현 마산자유무역지역) 또한 큰 피해를 입었다. 대부분의 공장 및 사무실 건물 1층이 물에 잠겼고 물류창고 또한 파도에 휩쓸렸다. 해일이 휩쓸고 간 마산 어시장도 초토화되면서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바람 태풍' 성격이 강했던 매미는 경상남·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강풍에 인한 시설물 파괴, 단전, 단수, 집중호우 등 막대한 피해를 한반도에 안겼다. 당시 매미의 '위험 반원(태풍의 우측 반원)'에 위치했던 부산에서도 강풍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다. 최대풍속 49m/s의 강풍으로 부산항 자성대 부두의 초대형 크레인 여러 대가 속절 없이 쓰러졌고, 해운대구 우동에 정박 중이던 선박형 해상관광호텔도 기울어지면서 바다에 처박히고 말았다. 여기에 만조와 해일이 겹친 탓에 낙동강 하구 인근 마을과 비닐하우스가 온통 물에 잠기며 피해가 커졌다.



이튿날인 13일 새벽 3시경 경북 울진군을 통해 동해상으로 빠져나간 매미는 오호츠크 해상에서 소멸했다. 당시 매미로 인한 국내 사망·실종자만 130명, 재산 피해는 4조2,225억원에 달해 역대 2위의 피해 규모를 기록했다.

#2 한반도 관통하며 물폭탄 쏟아부은 호우 태풍 '루사'(2002년)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하기 1년 전인 2002년 8월 31일. 한·일 월드컵 4강의 감동과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 태풍 '루사'가 최대풍속 36m/s, 중심기압 960hPa의 세력을 유지하며 전남 고흥군 일대에 상륙했다.

직경 1,100km에 달하던 대형 태풍 루사는 한반도의 중앙부를 관통했다. 고위도로 북상하면서 세력이 약해지는 다른 태풍과 달리 강한 비구름대를 동반하고 상륙한 루사는 그 위력을 유지한 채 매우 느린 속도로 소백산맥 일대 지역과 영동 지역에 22시간에 걸쳐 집중호우를 들이부었다.




특히, 강원 강릉시의 경우 시간당 100.5㎜, 일일 870.5㎜라는 대한민국 역대 최다 강수량을 기록했고,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다. 1981년 이후 30년 간 강릉시의 평균 연 강수량이 1,464.5㎜임을 감안하면, 이날 하루 연 강수량의 60%에 해당하는 비가 한꺼번에 쏟아진 셈이다.

당시 어마어마한 비를 뿌린 루사로 인해 강릉을 비롯해 강원 고성과 양양, 동해, 삼척, 주문진 등 영동 지역 하천 대부분이 범람했다. 또한, 갑자기 불어난 계곡 물이 가옥과 도로를 덮치면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루사로 인한 국내 사망·실종자는 246명, 이재민도 8만8,000여명에 달했다. 재산 피해액은 5조1,419억 원으로 역대 국내 태풍으로 인한 재산피해액 중 최고로 기록됐다.



#3 매미·루사에 맞먹는 태풍 '힌남노' 북상 중

20년 전의 역대급 태풍 매미와 루사에 맞먹을 정도로 강한 태풍 힌남노가 오는 6일 매우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남해안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청은 힌남노가 상륙 시 중심기압 925hPa, 최대풍속 51㎧(184㎞/h)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02년 루사, 2003년 매미의 상륙 당시보다 중심기압은 낮고 최대풍속은 더 빠르다. 매미와 루사를 뛰어넘는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이유다.

정부는 한반도가 힌남노의 직접 영향권에 드는 4일부터 7일까지 기상 예보에 귀 기울이고 안전에 각별히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고영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