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출신 배우'라는 말이 더는 낯설지 않다. 아이돌, 혹은 솔로 가수로 연예계에 입문했던 많은 스타들이 기존의 활동과 연기를 함께하거나 아예 배우로 전향해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는 드물다. 배우로 데뷔한 이들이 가수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모습은 최근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아이유와 수지는 대표적인 가수 겸 배우다. 아이유는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브로커'에서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주영 등과 호흡을 맞췄고 수지는 최근 쿠팡플레이 드라마 '안나'로 대중을 만났다. 연기자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지만 두 사람 모두 뿌리는 가수다. 아이유는 2008년 발라드곡 '미아'로 데뷔했으며 수지는 그룹 미쓰에이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오연서와 황정음은 가수로 데뷔했지만 음악 대신 연기에 집중해온 스타들이다. 젊은 세대 중에는 두 사람이 가수 출신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많은 상황이다. 오연서는 2002년 그룹 러브로, 황정음은 2002년 그룹 슈가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음악 방송 무대가 아닌 안방극장과 스크린에서 활약했다. 오연서는 최근 종영한 드라마 '미남당'에 출연했고 황정음은 2020년 '그놈이 그놈이다'로 대중을 만났다.
물론 배우지만 앨범을 발매한 이들도 존재한다. 2012년부터 연기 활동을 시작한 이이경은 2020년 앨범 '칼퇴근'을 발매했다. 당시 그는 음악 방송에 출연해 무대를 꾸미는 등의 활약으로 시선을 모았다. 또한 자신을 배가수(배우+가수)라는 타이틀로 소개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 이이경 같은 젊은 배가수는 매우 찾아보기 힘들다. 그 역시 MBC FM4U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에 출연했을 당시 "한동안 배가수가 가뭄 수준으로 없었다. 내가 다시 (배가수 활동) 시작을 한 거다"라고 말했다.
최근 가수 출신 배우는 많지만 배우 출신 가수는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본지에 "아이돌이 연예계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저 연예인이 되겠다는 정도의 의미로 아이돌의 길에 들어섰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며 적성대로 다른 분야로 넘어가는 것"이라는 게 하 대중문화평론가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가수, 아이돌로 데뷔했다가 어느 정도 시기가 되면 예능, 드라마, 등에 도전하고 본인의 적성을 찾으면 그쪽으로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배우 중 가수 활동을 할 만큼의 음악적 재능을 갖춘 이가 적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연기 활동을 하려는 가수의 앞에 늘 꽃길만이 놓이는 건 아닌 듯하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가수 출신 배우의 연기력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영화의 제작 소식이 전해졌을 때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아이돌 출신을 캐스팅하지 말아달라는 요구가 나오기도 한다. 배가수의 경우와는 매우 다른 반응이다. 많은 이들이 배우의 음악 활동을 응원해왔다.
하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이돌이 연기자가 될 때는 정당하게 배역을 차지했는지의 여부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다. 그러나 배우가 앨범을 내는 건 결이 다르다. 앨범을 냈다고 해서 무조건 1위를 하는 건 아니고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자연스레 잊힌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많은 네티즌들이 연기력이 부족하지만 인기는 많은 아이돌이 배우 지망생을 제치고 캐스팅되는 현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해오곤 했다. 아이돌의 발연기가 작품과 출연 배우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 또한 문제였다. 그러나 배가수들은 주로 솔로 활동을 선택했기에 다른 스타들에게 주는 피해도 적었다.
많은 이들이 절실하게 꿈꾸는 아이돌 타이틀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연예계 입문의 수단이라는 점은 다소 씁쓸하게 느껴진다. 배가수가 극히 드문 상황 속에서 앞으로 엄정화 임창정의 뒤를 잇는 진정한 실력자가 나타날 수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