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어른의 죽음

입력
2022.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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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마음 쓰이는 부고들이 있다. 기껏해야 기사 몇 줄로 스쳐가는 완전한 타인일 뿐임에도 그 상황과 심정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저릿해지는 사건들. 지독히도 습하고 어두침침하던 올여름엔 유난히도 그런 소식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밟힌 것은 어느 대학생의 죽음이다.

올해 갓 입학한 새내기 대학생이 방학 중 텅 빈 학교 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그간 자라 온 보육원을 떠나 홀로 살기 시작한 지 반 년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독립된 성인으로서의 삶을 위해 그에게는 700만 원의 '정착금'이 주어졌지만, 이 돈의 대부분은 대학 첫 학기의 생활비로 쓰였다. 목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지, 모은다면 무엇을 위해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 차분히 알려 줄 사람은 없었다. 삶을 꾸리는 일에 대한 불안감을 상담사에게 털어놓았던 그는 얼마 뒤 조용히 죽음을 택했다.

한바탕 여론이 들끓고 난 후, 보건복지부는 시설보호가 종료된 '자립준비청년'의 복지를 강화해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며 개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이미 지급되던 수당을 5만~10만 원 올리고 상담 인력을 약간 충원하는 등 기존의 정책을 미미하게 확대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물론 이전보다 약간이라도 개선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는 있겠지만,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포부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무엇보다 대상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고 사회 안착을 돕기 위한 정서적 지원이 여전히 엉성하다는 점이 큰 문제다. 독립 가구로서의 생활 방식을 학습할 가정이 없었던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사회인으로서 알아 두어야 할 상식들과 실용적인 조언을 적시에 해 줄 수 있는 정서적 후원자는 금전적 지원 이상으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당장 이번에 사망한 학생의 경우도, 평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돌봐 주는 사람이 없어 힘들다'는 내용의 답답한 마음을 주변인들에게 털어놓았다고 했다. 사회단체에서는 후원 가정이나 상담사와 자립준비청년의 1 대 1 매칭을 통한 전방위 밀착 지원이 필요하다고 권고하지만, 현재 국가가 지원하는 정서적 지원책이란 대상자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담사와 멘토 정도에 그친다. 제도로 미처 살피지 못해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뻔히 보이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스무 살, 만 열여덟 살. 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현대 한국사회는 스무 살 청년들이 성숙한 개체로서 자립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대학생은 물론이고 사회 초년생들조차 물가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어 부모의 집에서 캥거루족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 와중에 얼마간의 정착금만을 손에 쥐고 갑자기 '어른'이 되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사회가 얼마나 막막한 곳일지는 깊이 상상하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사망한 대학생의 유서에 적힌 문구다. 읽고 싶었던 책도 있고 사회복지사가 되어 자신이 살던 시설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도 있었던 그는, 삶이라는 혼자 풀기 버거운 숙제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 혼자만의 문제라면 깊이 애도하고 지날 일이지만, 비슷한 처지에 놓인 만 열여덟 살의 위태한 어른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이제 그들을 구해야 한다.


유정아 작가·'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