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급 좋아진다더니 더 늘어난 현대차 신차 대기…"싼타페 HEV 20개월"

입력
2022.09.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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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출고 대기 기간, 전월보다 2, 3개월 지연
싼타페·아반떼 HEV, 지금 계약해도 24년 5월 인도
하반기 완화 기대됐던 반도체 수급난, 다시 악화 
러시아 가스 수출 중단 여파·극심한 가뭄 겹쳐 
유럽 반도체 공장, 가동률 하락·라인강 운송 어려워


현대자동차그룹 신차 출고 대기 기간이 줄어들기는커녕 길어지고 있다. 반도체 수급난이 올 하반기엔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에너지 부족과 극심한 가뭄으로 반도체 생산과 운송에 차질이 생겨 신차 출고 대란이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1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현대차·제네시스·기아 9월 납품기간(납기) 정보' 문서에 따르면 대부분 차량 출고 대기 기간은 전월 상황과 비슷하거나 1~3개월가량 지연된 것으로 확인됐다. 8월엔 납기가 소폭 줄어들었지만, 한 달 만에 도리어 상황이 나빠진 셈이다.

새 차 출고가 가장 오래 걸리는 모델은 현대차 '싼타페 하이브리드(HEV)'이다. 8월보다 2개월 더 늘어난 20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 지금 계약해도 2024년 5월에나 인도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선루프, 6·7인승용 3열 시트 등 옵션을 선택하면 출고는 더 늦어진다. 아반떼 HEV도 9월 예상 납기가 20개월 이상으로, 8월(17개월)보다 3개월 늘어났다. 단종을 앞둔 그랜저도 HEV 모델의 경우 9월 계약분 출고 기간(10개월)이 전월 대비 2개월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네시스와 기아도 마찬가지다. GV70의 8월 예상 납기는 12개월이었지만, 이번 달엔 15개월로 3개월 늘어났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8개월이면 받을 수 있던 G80도 이젠 열 달 이상 대기해야 한다. 쏘렌토 HEV의 예상 납기는 18개월로 지난달보다 1개월 길어졌다. GV80, 스포티지 HEV는 출고 대기 기간이 지난달보다 늘어나진 않았지만, 계약 후 인도까지 18개월 이상 걸린다. 미니밴 '카니발 디젤'도 여전히 16개월 이상 걸린다.



예상과 달리 악화된 반도체 수급난…납기 지연 '후폭풍'


현대차·제네시스·기아의 9월 예상 납기가 지난달보다 늘어난 것은 반도체 수급상황이 다시 나빠졌기 때문이다. 실제 대부분 차량의 납기 지연 주요 원인은 엔진 전자장비를 제어하는 반도체(ECU) 공급 부족이다. 때문에 일반 내연기관차량보다 ECU가 두 배 이상 필요한 HEV 대부분은 납기가 더 늘어났다. 아이오닉5, EV6 등 주력 전기차의 경우 현대차·기아에서 반도체를 우선 공급하고 있지만, 여전히 출고 대기 기간이 12~14개월이나 된다.

현대차그룹은 당초 올 하반기 반도체 수급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2분기 이후 반도체 수급 상황이 좋아졌고, 덕분에 올 상반기 판매량도 도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전 세계 완성차 업계 3위에 올랐다.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부사장)은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하반기에는 반도체 수급난이 말끔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천연가스 부족·가뭄 여파 맞은 유럽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의 반도체 수급처 대부분이 유럽에 위치한 점을 납기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현대차그룹은 주로 현대모비스(한국), 보쉬(독일), 콘티넨탈(독일), 인피니언(독일), NXP(네덜란드),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스위스) 등에서 반도체를 공급받는다. 현재 유럽 공장들은 러시아가 천연가스 수출을 중단하면서 정상 가동이 어려워졌다. 또 독일의 경우 극심한 가뭄으로 라인강 수위가 내려가면서 공업용수 부족, 화물 운송 감소 문제가 생겼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최근 유럽의 경기 침체로 상황이 나빠지면서 반도체 업계 상황도 불안해지고 차량용 반도체 수급 정상화도 올 하반기가 아니라 내년 초로 미뤄지는 분위기"라며 "현대차그룹도 일본 르네사스 등 반도체 공급처 다각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일본 자동차 업계도 부족한 상황에서 추가 물량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종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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