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보호'한다는 ISDS... "강자의 횡포" 시각도

입력
2022.09.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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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964년 독일과의 IPPA부터
'외국 투자자의 ISDS 권리' 보장
추상적인 규정에 남용 가능성
비용 높고, 공공정책 퇴보 우려도
론스타 "배상 금액은 실망스러워"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절차(ISDS)’는 투자자(개인 또는 기업)가 다른 나라의 공공정책에 의해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국제중재기관에 조정 또는 중재를 요청하는 제도다. 중재 당사자가 '개인 대 개인', '국가 대 국가'가 아닌 '개인(기업) 대 국가'라는 특성이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분쟁 해결이 간소하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사건에서 우리 정부에 2,800억 원대 배상을 결정한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국제중재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투자자들은 그 외에도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등 이익에 따라 분쟁 해결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ISDS는 법률에 의한 재판이 아니다. 국경 밖 중립적인 제3자가 분쟁을 중재하는 서비스다. 그럼에도 ISDS에서의 결정은 강력한 구속력을 지닌다. 1958년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뉴욕협약)' 때문이다. 외국 중재기관의 판정도 국내에서 집행하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ICSID 설립 근거인 ‘국가와 타방국가 국민 간의 투자 분쟁의 해결에 관한 협약(1965년 협약)’도 결정의 구속력을 강조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론스타에 배상하라는 판단에 불복해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취소 또는 집행거부를 신청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하지만 △판정부 구성 잘못 △판정부나 중재인의 부정행위 △판정이유 누락 △재판 절차의 심각한 위반 △판정 관할권 없음 등의 취소 사유를 증거와 함께 집어 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한국은 1967년 1965년 협약에, 1973년 뉴욕협약에 각각 가입했다.

한국은 그 이전인 1964년 독일과의 투자보장협정(IPPA)부터 상대국 투자자의 ISDS 권리를 인정하는 조항을 넣은 것으로 알려진다. 론스타가 제기한 ISDS는 한·벨기에 양자 간 투자협정(BIT),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메이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발하며 제기한 ISDS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것이다.

ISDS는 재판이 아니기에 중재기관은 한 국가가 투자자의 소속 국가와 맺은 무역(투자) 협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따진다. 론스타의 경우 한·벨기에 BIT, 엘리엇·메이슨은 한미FTA 위반 여부가 쟁점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①과거 협정일수록 '(내국인과) 공정·형평한 대우' 등 추상적인 규정만 나열돼 ISDS 남용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론스타 사건의 경우 투자자와 투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ISDS를 제기한 당사자는 벨기에 국적의 론스타 산하 법인 'LSF-KEB 홀딩스'인데 실체 없이 서류로만 존재하는 회사(페이퍼컴퍼니)다. 그래서 "중재 당사자로서 자격이 없다"며 "중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나왔지만, 우리 정부는 중재판정 관할권 없음을 주장하지 않았다.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하는 '먹튀'도 투자로서 보호해야 하느냐는 의문도 있었다.

ISDS가 증가 추세라는 점에서 ②국가가 ISDS를 피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 건강, 안전과 관련된 공공정책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투자자의 편의를 보호하는 빠른 중재'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변호사비 등 ③비용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다. 여러 국제기구들이 ISDS 개선을 검토하는 이유다.

2011년 한미 FTA를 기점으로 한국에서도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ISDS 폐지 요구가 나왔다. 2019년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는 "소송 비용이 과다하게 들고 결과 예측 가능성이 매우 낮은 문제가 있다. 강자의 횡포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폐지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ICSID를 통해 2억 달러를 웃도는 배상금을 챙기게 되는 론스타도 일단 결과에 불만을 나타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론스타 측 대변인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판정부가 우리의 주장을 정당화해 준 점은 기쁘지만 배상 금액은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배상액은) △론스타와 투자자들이 한국 정부의 부당행위로 입은 손실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구제하면서 감수해야 했던 위험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주와 한국의 금융시스템에 기여한 가치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윤주영 기자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