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지연' 논란에 판사도 속앓이

입력
2022.09.01 10:00
작년 민사 1심 선고까지 455일
전자소송 많아지면 기록 폭증
"야근 강요 전에 인력 보충부터"
변호사들은 심리 부실 지적도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재판 지연 문제가 언급되면서 일선 판사들의 불만이 감지된다. "근본 원인은 근무환경과 인사제도 보완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란 것으로, 재판 지연의 원인을 판사에게만 돌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에 참여하는 사건 당사자들과 변호사들 사이에선 "과거에 비해 판사들이 재판에 투입하는 절대적 시간이 줄어든 것 같다"며 시각 차를 드러냈다.

오석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통해 불거지긴 했지만, 재판 지연 문제는 오랫동안 사법부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현안으로 꼽혀왔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해 민사합의부가 처리한 1심 사건은 평균 445일 정도가 소요된 것으로 집계됐다. 소송 제기부터 선고까지 1년 이상 걸린다는 것으로, 불과 2년 전인 2020년만 해도 그 기간은 309일 정도였다.

재판이 늘어지게 된 원인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일선 판사들은 경력법관 위주의 '임용제도 변화'를 첫손에 꼽는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경력법관들은) 기존 판사들처럼 장기간 재판부 배석을 하면서 기록을 효율적으로 살펴보고 판결문을 작성하는 훈련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판을 속도감 있게 진행할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속도보다는 공판의 질을 우선시하는 법원 내 분위기도 재판 지연의 이유로 거론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최근 공판주의 기조가 강해지면서 소송 당사자의 의견서와 변론 요청이 있으면 대부분 받아줘야 하는 분위기라 재판이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검토할 기록은 늘었는데, 이를 감당할 판사 인력은 제자리걸음이라는 데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판사 한 명이 처리해야 할 절대적 사건 수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지난해 지방법원의 법관 한 명이 처리한 사건은 555.2건에 달했다. 이는 독일의 5배, 일본의 3배 수준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요즘에는 기록이 방대하고 내용 파악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깡치사건'이 기본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단기간에 선고할 수 있는 사건이 드물다"고 털어놨다.

반면 재판 당사자들과 변호사들은 판사들과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과거보다 사건을 무성의하게 처리하기 때문"이라며 판사 개인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형사재판 변호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란 이유로 2년이 넘도록 재판을 열지 않는 판사도 있다"며 "판사가 의지만 있다면 진행할 수 있는 사건으로 보이는데, 유족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이라고 했다.

판사와 재판 당사자 사이의 이견은 지난 6월 진행된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공개된 '항소심 제도개선 설문조사'(판사 647명·변호사 153명 대상)에 따르면, 판사 응답자는 사건 난이도와 법관 인력 부족을 재판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꼽은 반면, 변호사 응답자는 법관 부족과 함께 판사들의 노력 부족, 심리 부실을 이유로 꼽았다.

문재연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