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첨단산업에 3,3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반도체·과학법'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이 법이 일자리 수만 개를 창출하고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가져와 미국 제조업을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말처럼 미 행정부와 의회가 한마음으로 추진 중인 제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은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의(of America) △미국에 의한(by America) △미국을 위한(for America)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일본·중국·대만·독일 등에 내줬던 첨단 제조업 주도권을 다시 '회수'하겠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첨단 제조업 부흥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꿈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5년 중국제조 2025(국산화율 제고를 중심으로 한 산업고도화) 전략을 통해 제시한 중국몽(中國夢)과도 비견된다.
미국이 첨단 제조업 국가로 복귀한다는 그림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차근차근 그려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 초부터 '미국 내 공급망 구축'을 주요 의제로 내세웠다. 취임 직후 내린 행정명령이 시작이었다. 100일간 4대 핵심산업(반도체·배터리·희귀광물·의약품) 및 6대 산업(방위·보건·에너지·정보통신·운송·농업)의 현황과 육성 계획을 검토하라는 것이었고, 작년 6월 그 조사의 결과물인 '공급망 100일 보고서'를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그리는 제조업 부활의 밑그림은 공급망 보고서 발표 5개월 뒤 하원을 통과한 더 나은 재건법(Build Back Better Act)을 통해 구체화한다. 해외제품보다 자국 생산품에 더 큰 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BBB법은 의회의 수정을 거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란 이름으로 최근 대통령 서명을 거쳤다. 이 법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일정 비율 이상 미국 등에서 생산된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사용한 차량에 보조금이 지급되고,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세액공제 혜택도 주어진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산 우대를 위해 89년 전 만들어진 법까지 바꿨다. 1933년 제정돼 연방정부 구매력(연 6,000억 달러)으로 조달 물품을 사들이는 미국산구매법(Buy American Act)을 보완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안보, 보건, 경제 회복에 필요한 제품의 경우 연방정부가 더 높은 가격을 주고도 미국산을 사들이는 특혜조항이 신설된다. 업계에선 반도체, 의약품, 첨단 배터리가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의 제조업 육성책은 자국산 특혜를 넘어 '혁신적인 미국산'을 생산하는 데도 집중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최종 서명한 반도체·과학법이 그 결과다.
우선 에너지, 바이오 및 기초과학 연구개발(R&D), 인력양성, 인프라 확충에 2,000억 달러를 투입한다. 반도체 등 10대 핵심기술 개발을 위해 국립과학재단(NSF) 예산 810억 달러도 확보한다. 자국 첨단 반도체 제조역량을 높이기 위해 527억 달러의 예산을 조성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렇게 미국 정부가 미국산에 집중 혜택을 주겠다는 한결같은 신호를 보내자, 글로벌 기업들은 잇달아 미국 내 투자를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집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1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부터 올해 5월까지 미국 내 생산기지 건설 등 투자 계획을 밝힌 글로벌 기업은 총 26개였고, 투자 규모 합계는 2,734억 달러에 달했다. 이들 기업의 투자로 만들어질 새 일자리는 12만 개로 집계됐다.
투자 기업 면면을 보면 미국이 제창한 칩4 동맹(미국 주도 반도체공급망 협의체) 소속인 미국·한국·대만·일본의 기업, 미국의 전통 우방인 호주·독일·포르투갈의 업체, 그리고 과거 적국이었던 베트남 업체(빈패스트)까지 포함돼 있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반도체·과학법은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을 고려한 미국이 향후 10~15년간 전략을 담은 제조업 육성책의 결정판"이라며 “글로벌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계획 발표는 바이든의 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