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제조업 육성책에 올라타기 위해선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특히 최대 수출국 중국과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정교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중국을 배제한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뜻을 확실히 드러냈다. IRA를 유리하게 활용하려면 미국에서 최대한 많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원자재 수급 경로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
배터리의 경우 7월 말 기준 수산화 리튬과 코발트, 천연 흑연 등 핵심 소재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비율이 80%를 넘어, 자칫 혜택을 받는 대상에서 빠질 수도 있다. 내년부터 배터리 만들 때 들어가는 광물은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나라에서 최소 40% 이상 조달해야 하고, 2027년에는 그 비율을 80%까지 높여야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캐나다·인도네시아 등 수입원 다변화에 노력하고 있지만 중국을 완전히 대신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중국과의 거리 두리가 자칫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만 기대다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 때처럼 중국이 한한령 발동 같은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도체가 첫 제재 대상으로 거론된다. 미국이 반도체지원법을 추진한 데 이어 이달 말까지 미국이 바라는 대로 한국이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에 가입한다면 중국을 자극할 수 있어서다.
중국은 한국 메모리반도체 수출의 30%를 차지하는 주요 시장으로, 삼성전자의 낸드 생산 설비 38%가, SK하이닉스의 D램 설비 44%가 각각 중국에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역시 중국 현지에 반도체 기술 투자를 못하게 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마련한 생산 기지들은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물론 칩4 가입을 해도 국내 반도체 산업의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메모리반도체 분야는 전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이 7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라며 "중국이 직접 보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IRA가 없었더라도 우리 기업들은 생산 기반을 중국 아닌 다른 나라로 분산하려 했다"며 "앞으로 미국 시장에서 인센티브를 얼마나 가져올지, 어떤 생산 시설을 북미에 지을지 등 현재 상황을 전략 산업 도약의 기회로 활용하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