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학교 근처에 가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수능 원서 접수를 하려면 학교에 가야 한다고 하네요."
11월 17일 실시되는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 중인 A씨는 '고등학교 졸업자의 수능 원서 접수는 출신고에서 해야 한다'는 교육부 방침에 대해 29일 이 같은 걱정을 털어놨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진학한 대학은 이미 졸업했지만 진로를 바꾸기 위해 수능을 다시 보려고 마음먹었는데, 첫 관문인 원서 접수 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우울증 치료까지 받은 A씨는 수능 원서 접수를 위해 학교를 다시 찾는 모습은 상상도 하기 싫다고 호소했다. 따돌림을 주도한 동창을 학교에서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당시 A씨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고 오히려 편애하는 학생을 감쌌던 교사들을 마주칠 수 있어서다. A씨는 "사립학교라 오래 남아 있는 선생님들이 많아 원서를 접수하다 만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수능 원서 접수 방침을 지키려면 A씨는 모교에 가야만 한다. 고등학교 졸업자는 출신고에 수능 원서를 내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출신고가 아닌 관할 시험지구의 교육지원청도 원서를 접수할 수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①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출신고 소재지 관할 시험지구가 다르거나 ②출신고 소재지가 동일 시험지구 내에 있지만 행정구역이 다른 경우로 한정됐다. 원서 대리접수도 코로나19 확진자, 장애인, 수형자, 군복무자, 입원 환자, 해외 거주자만 가능하다.
세종·충남·충북·대전 교육청에서 원서 온라인 접수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고 있지만 이 경우도 본인 확인을 위해 모교를 방문해야 한다. 따라서 A씨가 출신고 대신 교육지원청에 원서를 내는 방법은 이사뿐이다. A씨는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주해야 하는 상당한 불편과 경제적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며 교육부의 원서 접수 방침이 부당하다고 했다. 네이버 지식인 등 온라인 공간에서도 A씨 사례처럼 "출신고에 꼭 찾아가야 하나,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얘기가 오가는 게 싫다"는 고민을 찾아볼 수 있다.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교육부 방침이 부당하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도 최근 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교육부는 "인권위 조사 결과를 보고 제도를 고칠 수 있을지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당장 다음 달 2일까지인 올해 수능 원서 접수 기간 내에 방침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졸업생이 출신고에 원서를 내야 본인 확인이 용이하고, 교육지원청에 접수자가 몰리면 업무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