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에서 개최된 한미 과학자 회의에 참석해 과학기술외교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주제 가운데 하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경쟁이 전개되고 있는 현재의 불안정한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과학기술외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였다. 회의 참석자들은 대부분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과 미국 과학기술외교 현장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과학기술이 적대 국가들 간의 관계 개선에 교량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에 내재된 합리성과 보편성이 소프트파워로 작동하는 과학기술 공공외교가 중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미국이 쿠바와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양국 과학한림원 간의 협력이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되었으며, 영국 과학자들과 북한 연구자들 간의 백두산 화산 공동 연구 역시 서방과 북한 측의 유용한 협력 채널로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에서 과학기술 협력보다 오히려 경쟁과 배제의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어 과학기술외교에 대해 낙관하기 어렵다. 예컨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항의로 유럽연합(EU)과 유럽우주국이 러시아와 추진 중인 달 탐사 협력을 포함한 다양한 과학기술 연구 및 교육 협력 중단을 결정하였다. 현재 미국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미국 대학이나 연구소는 중국 연구자들과 협력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 남북관계가 좋았던 2000년대 초반에 열렸던 다양한 남북 과학기술협력 채널들이 모두 닫힌 상황이다. 사실 국가 간 관계가 악화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과학기술이 힘을 발휘해 국가 간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하면 좋은데 현실은 오히려 과학기술에서 갈등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국가 간 정치외교 관계에 따라 과학기술외교가 부침을 겪는 것을 지켜보면서 정치외교의 논리가 과학기술을 압도하는 듯하여 씁쓸하다.
하지만 회의에 연사로 초청된 노벨상 수상자인 존 매더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박사의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 개발 과정과 망원경이 찍은 사진들의 의미를 설명하는 겸손하고도 소박한 강연을 들으며, 수많은 과학기술자들의 일상적인 연구로 뒷받침되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되기 어려운 과학기술의 놀라운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시간은 내게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다. 지난 25년 동안 100억 달러의 예산과 14개 국, 1만 명 넘는 연구자들의 협력으로 탄생한 JWST는 향후 20년간 경이로운 우주의 모습을 찍어 전송하면서 우주 생성과 진화과정 및 외계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확장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1970년대 중반 아폴로, 소유스호의 도킹 경험은 미소 우주 협력의 자산이 되었고 이러한 과정들을 딛고 우리는 현재 새로운 우주를 만나고 있다. 중국도 내년 쉰텐 우주망원경을 발사할 예정이며 향후 미중 우주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겠지만 협력의 작은 씨앗들이 싹틀 여지가 있다고 보며 과학기술외교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게 된다. 과학기술이 정치외교와 얽혀 협력과 경쟁 속에서 지그재그로 발전하는 그 이면에서, 수많은 과학기술자들의 연구는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며 이들의 연구는 국가 간 경쟁을 훌쩍 넘는 의미를 지닌 그 어떤 지점으로 우리를 나아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