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나온 89명을 전담요원 1명이...밀착지원 애초 불가

입력
2022.08.28 09:00
'보육원 출신 청년 비극' 잇따른 광주
6월 개소한 자립지원전담기관 직원 6명뿐
이들이 도와야 할 자립준비청년은 536명
"연락 닿은 380명 중 25%만 가구 방문"
강기정 광주시장 "인력 확충 등 지원 확대"

기댈 곳 없는 보육원 출신 청년들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광주에서 자립지원전담요원 1명이 100명에 가까운 보호종료청소년(자립준비청년)을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 보호라는 최소한의 울타리를 벗어나 홀로서기 해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은 누구보다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애초에 이들을 세심하게 돌보는 건 거의 불가능한 구조였다는 얘기다. 자립준비청년 중 절반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할 정도로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광주광역시 관계자는 28일 본보와 통화에서 "올해 6월 개소한 자립지원전담기관이 직원(자립지원전담요원) 6명을 채용해 보호종료청소년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립지원전담기관은 보호대상 아동이 만 18세가 돼 위탁보호가 종료되거나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한 경우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기관이다. 자립지원전담요원은 아이들이 만 15세가 되면 자립 계획을 세우고 홀로 설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고, 퇴소한 뒤에도 5년간 계속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 25일 긴급대책을 발표한 광주시가 공개한 보호종료 5년 이내 사후 관리 대상자(자립수당 지급자)가 모두 536명인 점을 감안하면 자립지원전담요원 1명이 89명을 관리해야 하는 셈이다. 소수 인력으로 자립준비청년들을 밀착지원하기에는 구조적으로 벅찬 상황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6월 한 달간 직원들을 채용해 교육하고, 7월부터 아이들에게 연락했으나 연락이 닿은 건 380명 정도이고, 약속을 잡아 가구 방문까지 이뤄진 건 그중 25% 정도"라며 "실태 파악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18일 사망한) 보육원 출신 남자 대학생은 자치구의 직원이 정기적으로 사례 관리를 해왔다"며 "3일 전에도 만나 잘 지내는지 확인했는데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다른 시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4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의 자립지원전담요원은 모두 267명이고, 이들이 돌봐야 하는 아동청소년의 수는 2만2,807명이었다. 보고서는 "자립지원전담요원 1명 당 85.4명의 보호 대상 아동 및 보호종료청소년이 배정되어 있어, 보호종료 이후의 촘촘한 자립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자립지원전담기관이 아예 없는 시도도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전국 17개 시도 중 '자립지원전담기관'이 설치·운영되는 곳은 15곳"이라며 "아직 전담기관이 없는 서울과 세종은 올해 연말까지 개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소한 곳 상당수는 작년과 올해 문을 열어 이제 걸음마를 뗀 정도라고 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작년에 복지부와 협의할 때 '이 정도 지원으로 어떻게 개소해 운영하냐'고 했더니 한정된 자원 탓에 복지부도 난색을 표하며 개소에 방점을 뒀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뒤늦게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이날 연말까지로 예정됐던 보호종료아동 사후관리 상담을 10월까지 조기 실시하는 등 아동보호 체계 긴급점검에 나섰다. 강기정 광주시장도 전날 자립전담기관 인력 확충을 비롯한 다양한 지원프로그램 마련 등을 약속했다.


자립준비청년 2명 중 1명은 '극단 선택' 충동

자립준비청년을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의지하거나 기댈 곳 하나 없어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특히 자립준비청년 2명 중 1명꼴로 극단적 선택 충동을 느낄 정도로 매우 취약하다.

2020년 9~1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실태조사(보호종료예정아동 732명, 보호종료아동 3,104명)에서 보호종료아동의 50%는 "'죽고 싶다(극단적 선택)'고 생각한 적 있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2019년 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복지패널의 일반 패널(2.61%)과 저소득 패널(3.29%)보다는 무려 15~20배가량 높고, 2018년 자살실태조사 19~29세 응답(16.3%)보다 3배 이상 높다.

자립준비청년들이 극단적 선택 충동을 느끼는 이유도 '경제적 문제'(33.4%)가 가장 높았고 가정생활 문제(19.5%)와 정신과적 질환(11.2%) 등이 뒤를 따랐다. 반면 이들이 속한 나이대의 일반 집단(2018년 자살실태조사 19~29세)은 성적·진로 문제(29.9%)와 남녀 문제(24.4%)가 주를 이뤄 문제의 양상이 전혀 달랐다.

이와 관련, 최근 광주광역시에선 보육원 출신 남녀 청년 2명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이들은 만 18세가 된 뒤 보육원을 나와 각각 대학교 기숙사와 장애를 가진 부친의 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자립준비청년은 갑작스럽게 위기가 닥치는 게 아니라 주변에 도움받을 수 있는 어른, 가족, 친척이 없어 당연히 위기를 예측할 수 있다"며 "사전에 대처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