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감자를 수확하고 정확히 두 달, 60일이 되는 즈음에 배추를 심는다. 그래야 80일 정도 키워 김장을 할 수 있다. 감자 수확 후 바로 심지 않는 이유는 배추의 고향이 중국 화북인지라 한여름에 오히려 취약하기 때문이다. 배추는 15~20도에서 제일 잘 자라고 영하 8도에도 쉽게 얼지 않는다.
나는 감자 이랑을 정리해 배추를 심기로 했다. 이랑을 만들어 40~50㎝ 간격으로 모종을 심으면 되는데 문제는 잡초다. 두 달간 방치해 둔 이랑에는 무더위와 잦은 비에 잡초가 한 키나 자랐다. 텃밭을 해본 사람은 안다. 한여름 잡초가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큰바랭이, 방동사니, 쇠비름, 털별꽃아재비 등, 잡초는 종류도 많다. 언젠가 텃밭을 대충 훑어보니 50종이 넘었다. 게다가 이곳은 깊은 산자락인지라 나도송이풀, 누린내풀같이 귀한 야생화까지 날아와 드문드문 자리를 잡는다. 무더운 여름, 차디찬 지하수를 온몸에 뿌려 가며 잡초와 싸우는 것도 고역이지만 야생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꽃까지 피워 한껏 모양을 낸 식물을 호미로 캐낼 때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하기야 어디 잡초가 따로 있으랴. 이곳에서야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쫓겨나지만 다른 곳이라면 자연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제 몫을 하는 존재들이다. 쇠비름만 해도 한때 항암효과로 큰 인기를 누리지 않았던가. 결국 잡초가 잡초인 이유는 태생이 비천해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욕심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행여 애꿎은 존재까지 잡초 취급을 하며 혐오를 남발하지 않을 일이다.
잡초를 정리하면 퇴비를 하고 한 주 후 이랑을 만들고 멀칭을 한다. 예전에는 친환경을 고집한답시고 멀칭을 피했지만 기껏 일주일에 한 번 텃밭을 찾는 나로서는 역시 잡초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 농약도 마찬가지다. 다른 작물이야 직접 제조한 천연농약만으로 방제가 가능하지만 배추만큼은 별무소용이다. 특히 벼룩잎벌레, 일명 톡톡이라는 놈은 덩치가 작은 데다 개체 수도 많아 서너 시간씩 쪼그리고 앉아 잡아봐야 다음 주면 개체 수는 늘고 배추 잎은 구멍만 남고 만다.
책으로 농사를 배운 나 같은 사람의 한계가 그렇다. 자연이 시키는 대로만 하자며 시작한 텃밭이건만 친환경이라는 당위에 눈이 멀어 고집스럽게 자연과 싸우려 든 것이다. 결국 친환경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농사를 지을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2년 전부터는 모종을 심고 두 주 후 단 한 번 친환경 농약을 살포했는데 덕분에 꽤나 실한 배추를 수확할 수 있었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실패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농사를 지으며 깨달은 바가 그렇다.
배추는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식물이다. 내가 심는 불암플러스 배추는 특히 맛이 다디달아 나비, 민달팽이, 메뚜기 등 온갖 곤충, 벌레가 달려들지만, 더우면 더웁다고 비가 많이 오면 습하다고 마름병, 무름병 등 병도 쉬이 앓는다. 배추를 기르며 끊임없이 자연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유다. 이상도 당위도 중요하겠지만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얻어먹으려 해도 자연 앞에 한없이 겸손해져야 한다.
마침내 준비가 끝났다. 난 잔뜩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지막 기도 한마디를 보탠다. 부디, 김장 때까지 무사히 무럭무럭 자라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