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도 모르는 제주 동굴의 신비...용암길 따라 숨은 매력 엿본다

입력
2022.08.29 04:30
20면
10월 1~16일 열리는 '2022 세계유산축전'
거문오름~월정 바다 용암 흐름 따라 투어
극소수 인원 벵뒤굴 등 비공개 동굴 탐험
제주민이 직접 소개하는 제주문화 체험도

엉금엉금 바닥을 긴다. 작은 랜턴 빛에 의지한 채로.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미처 허리를 제때 굽히지 못할 때마다 낮은 천장에 머리를 쿵 부딪친다. 헬멧 덕에 부상은 피할 수 있어도 느닷없는 충격에 혼이 쏙 빠진다. 이달 25일 찾은 제주 선흘리 벵뒤굴은 손님에게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약 1만 년 전 흐른 용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신비의 공간을 보려면 노력이 필요했다. 뜨거운 용암이 굽이쳐 흐른 결이 여전히 선명한 바닥. 인간을 피해 동굴을 점령한 박테리아가 벽면에 그린 금빛의 추상화. 동굴 내부는 다른 행성에 온 듯한 신기로움을 내뿜었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알리기 위한 축제인 '2022 세계유산축전'이 10월 개최된다. 이날 취재진에게 공개된 벵뒤굴을 비롯해 평소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세계유산들이 공개되는 날이다. 10월 1일부터 16일까지 딱 16일간이다.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곳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과 성산일출봉, 그리고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다. 이 중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약 1만 년 전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이 월정리 해변까지 14㎞를 흐르면서 형성된 동굴 8개를 포함한다. 김녕굴 및 만장굴, 벵뒤굴 등이 포함된다.

행사 총괄을 맡은 강경모 총감독은 "세계자연유산 지역이 제주도 전체 면적의 약 10%를 차지한다"며 "하지만 관광객은 물론 제주도민들도 그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다 알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제주 토박이들도 깊이 가보지 못한 숨은 제주의 매력을 보여주자는 게 이 행사의 목적이다. 올해로 3년 차가 된 행사지만 태풍과 팬데믹 등 여파로 축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됐던 터라 특히 올해 행사에 거는 기대가 크다.

가장 규모가 큰 체험 프로그램은 해설사와 함께 걷는 '세계자연유산 워킹투어- 불의 숨길, 만년의 길을 걷다'다. 거문오름에서 월정리 해변까지 약 26㎞를 4개 구간으로 나눠 운영한다. 1회당 최대 30명씩 유료(5,000원)로 사전 예약을 받는다. 총 6,000여 명이 참가할 계획이다. 일반인 접근이 힘든 만장굴(비공개구간)과 김녕굴, 벵뒤굴을 탐험하는 '세계자연유산 특별탐험대' 역시 사전 신청을 받는다. 만장굴·김녕굴은 10명, 벵뒤굴은 6명이 한 그룹을 이뤄 동굴 내를 둘러보게 된다.

소규모 무료 프로그램들도 운영한다. 만장굴 공개구간(2구간)과 비공개구간(1, 3구간)을 모두 보는 '만장굴 전 구간 탐험대'로 딱 12명이 무려 9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미 선정됐다. 50대 1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총 30명의 순례단은 워킹투어, 만장굴 비공개구간을 비롯해 성산일출봉 등 세계자연유산 대장정에 나선다.

올해 행사의 특징은 세계자연유산 지역 7개 마을 주민 참여다. 이들은 프로그램 설계부터 예산 배정, 운영, 해설 등 전 과정에 동참한다. 그 결과 7개 마을이 각자의 특성을 살린 체험 프로그램을 축전 기간에 운영한다. 덕천리 마을을 담당하는 양영선(52) 사무장은 "마을 중심인 모산리 연못 일대에서 캠핑을 하면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중 웃산전굴과 용암교까지의 비공개 구간을 탐방하는 프로그램도 세계유산본부의 허가를 받아 운영할 계획이다.

'세계유산축전'의 철칙 중 하나는 자연유산 보존을 위해 비교적 작은 규모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행사를 위한 인위적 장치도 최소화했다. 강 감독은 "자연유산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훼손되면 안 되기 때문에 동굴 탐험 같은 경우도 참여자 수를 크게 늘리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 성산일출봉 앞 공원처럼 공개된 장소를 활용해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페스티벌 사이트' 등의 행사도 마련한다.

제주= 진달래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