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하고 병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망한 '수원 세 모녀' 외에도 연락이 두절된 고위험군이 1,1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의 약 20%는 어려운 처지에도 주변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상당수는 스스로 고립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직접 지원을 신청하지 않는 고위험군을 찾아내서 보호하는 게 복지 전달 체계의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2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세정·김기태 부연구위원의 연구보고서 '사회배제를 보는 또 다른 시각:도움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따르면 '갑자기 큰돈이 필요할 때' 도움 받을 곳이 없고 도움을 원치 않는 '고립 집단' 비율은 13.07%다. 도움 받을 곳이 있어도 원하지 않는 '자발적 배제 집단'도 8.61%라 둘을 합치면 10명 중 2명(21.68%)은 스스로 지원을 거부하는 셈이다.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도 도움을 거부하는 자발적 배제 집단(8.32%)과 고립 집단(11.78%)의 비율은 큰 차이가 없었다. 연구자들은 고립 집단이 고독사, 은둔형 외톨이, 가족 살해 후 극단적 선택 등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고 분석했다.
이는 지난해 '사회 참여, 자본, 인식 조사'에 응한 만 19세 이상 60대 미만 8,185명의 표본을 추출해 분석한 결과다.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한 노인 독거가구 등은 방문이 어려워 60세 이상은 분석 대상에서 제외한 점을 감안하면 실제 비율은 이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8~9% 정도인 자발적 배제 집단이 도움을 원치 않는 이유는 불분명하다. 정세정·김기태 부연구위원은 "정서의 이면에 연대의 거부, 관계의 단절, 극단적 개인주의, 냉소 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5∼7월 복지 사각지대 발굴 3차 조사에서 찾은 고위험군은 20만5,748명인데, 이 중 1,117명은 수원 세 모녀와 마찬가지로 주민등록 주소지에 살지 않았다. 연락이 닿지 않아 복지부와 관할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들을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대상'으로 분류했다.
자발적 배제·고립 집단 비율이 약 20%라 연락이 두절된 고위험군에서 유사한 비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또한 고위험군에 포함되지 않았던 수원 세 모녀처럼 고위험군 밖에도 위기에 처한 이들이 다수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부 의뢰로 수행해 지난해 11월 제출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접근성 강화 방안 연구'는 이같이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이유의 하나로 신청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2015년 생계, 의료, 주거, 교육 등 맞춤형 급여로 바뀌며 준비 서류가 더 많아지고 복잡해졌다. 또한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라는 인식이 부족해서 신청을 못하거나, 주변 지인들과 비교한 뒤 탈락할 것으로 지레짐작해 복지급여를 포기하는 사례도 많았다고 지적했다.
연구자들은 "가족 단절, 이혼 등으로 관련 서류를 받지 못해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며 "신청 과정에서 가질 수 있는 빈곤에 대한 사회적 낙인감도 신청을 꺼리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복지 전문가들은 본인이 신청하지 않아도 가능한 직권조사에 의한 보호 필요성을 강조한다. 문진영 서강대 교수는 "자발적 고립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어 가장 위험하다"며 "직권조사는 기본적으로 동의가 필요한데, 동의를 거부할 경우 왜 그렇게까지 됐는지 심리치료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