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아산병원의 30대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수술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전원돼 며칠 후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뇌졸중 적정성 평가에서 1등급을 받은 국내 최대 규모, 세계 50위권의 상급종합병원에서 골든타임을 다투는 환자가 제 시간에 수술을 받지 못해 숨진 것이다. 이 사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접근성을 자랑하면서도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체계가 허약한 우리 의료 현장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의료수요는 높아지고 있지만 2006년부터 의대 정원이 동결된 결과 나타나고 있는 의사인력 부족, 중요도는 높지만 높은 사고 위험과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을 감내해야 하는 필수의료 분야 인력의 처우 등 복합적 원인에 기인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윤석준(55)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보건대학원장)를 2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나 필수의료 공백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현실적 해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윤 교수는 보건의료체계, 정신건강정책 연구자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연구소장,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_무엇을 필수의료로 볼지에 대해서부터 의견이 모두 다르다. 필수의료란 무엇인가.
“국민 정서상 이번처럼 중증에 응급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좁은 의미에서는 필수의료로 받아들일 것 같다. 가족 중에 갑자기 뇌출혈이 생겼는데, 가야 할 병원을 찾을 수 없고 또 병원을 찾았다고 해도 수술을 못한다고 하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굳이 진료과목을 특정하자면 의료계에서 기본과로 불리는 '내외산소'(내과ㆍ외과ㆍ산부인과ㆍ소아청소년과)가 해당될 것이고 여기에 응급상황에서 중증 시술을 필요로 하는 신경외과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이 분야부터 투자해야 한다.”
_넓은 의미의 필수의료에는 무엇이 포함되나.
“신체 건강만큼 마음 건강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정신건강의학과도 필수의료에 해당된다. 정신질환으로 규정할 수 있는 조현병, 조울증, 반복성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이 한 해 50만 명 가까이 된다. 입원하는 사람만 7만 명이다. 그런데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면 입원할 병원이 없다. 가령 조현병이 발생하면 응급실로 갔다가 급성기 병동(단기간 치료를 요하는 환자가 입원하는 병동)에 입원시켜 초기에 치료를 잘 해줘야 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제대로 훈련받은 의료인력뿐 아니라 폐쇄병동 등 시설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병원 경영자 입장에서는 정신과병동은 공간만 차지하고 돈이 안 되니 없애고 있는 게 현실이다.”
_필수의료 인력이 왜 부족한가에 대해 ‘의사인력 공급 자체가 부족해서 그렇다', 젊은 의사들의 ‘일 가족 양립을 추구하는 경향 때문이다’ 등등 여러 분석이 나온다. 어떻게 봐야 하는가.
“오늘 벌어지는 사회현상은 과거의 반영이다. 상당 부분은 정부가 제도로 풀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거나 실기한 결과 나타난 것이다. 문제들이 누적됐다가 둑이 터진 것이다. 정부가 의사, 간호사 같은 의료자원을 적절하게 분배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정책수단을 쓸 수 있다. 건강보험 재원을 이용해 수가(병원에 지불하는 개별 의료행위의 비용)로 조정하는 게 그 하나이고,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같이 일반예산을 투입하는 방법이 다른 수단이다. 정부가 양자를 균형 있게 활용해야 하는데 우리는 건강보험 수가를 통해 의료공급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데만 치중했다. 그 사이 병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 수준으로 폭증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20년간 의사 증원이 거의 없었던 것도 이런 현상을 가져왔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의사 증원 없었던 것만이 원인이 아니다. 더 복잡하다. 매년 배출되는 3,000명 가까운 의사 대부분은 전문의를 선택할 때 무한대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된다. 의대 졸업생들의 전문과목 선호도에 따른 배출은 개원 후 1차 의료기관의 수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니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같이 1차 의료기관에서 보상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전공과목은 전문의 지원단계에서 미달사태가 나는 것이다.”
_시민단체들은 무엇보다도 의사 부족이 필수의료 공백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의사 증원은 필수라고 말한다. 반면 의사들은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 의사 숫자가 많은가 적은가를 놓고는 견해가 크게 갈린다. 현재 병원급 이상은 의사 숫자가 부족하고 개원의사는 도시 지역 이상에서 과잉공급되고 있는 것이 팩트다. 의사를 무조건 늘리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다. 다만 의사를 무작정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고 본다. 의대 졸업생에게 개원할 수 있는 자유가 무한대로 보장되는 현재와 같은 의료공급 구조하에서는 의사 증원이 가져올 정책효과는 불분명하다. 최근 서울아산병원 사례로 문제가 된 신경외과의 경우 다른 전문과목에 비해 공급이 적지 않지만, 중증 고난도 수술의사가 부족한 상태다. 의사의 절대 숫자가 부족한 것 이외에 다른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가정의학과를 예로 들어보자. 서구에서 가정의학과 의사는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에게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질환을 관리해주는 역할을 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300명 가까이 배출된다. 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피부미용같이 전공과목과 동떨어진 의료서비스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유인구조하에서는 의대생의 전문과목과 그 공부를 마치고 전문의가 됐을 때 제공할 서비스 간 미스매치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현재의 전문의 수급 현황을 면밀하게 분석해 부족한 전문과에 타과의 정원을 수평 이동시키는 방법을 쓸 필요도 있다.”
_의료공백이라는데, 대학병원은 의사가 없고 동네의원 의사가 경쟁하는 체계도 문제 아닌가.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과 동네의원 간 경쟁하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동네의원을 잘 안 가는 이유가 가령 한 달 전에 대학병원에서 CT(컴퓨터 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를 찍더라도 그 정보가 동네병원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 동의하에 병원 간 정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조금 더 나아가 제안하자면 협력이 가능한 대학병원과 중소병원, 동네의원이 진료를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면 암은 췌장암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제 만성질환에 가까울 정도로 생존율이 높아졌다. 하지만 항암치료 같은 초기 집중치료를 받은 후에도 환자나 가족들은 불안하니까 대학병원에 간다. 그러나 대학병원에서는 사실상 해줄 게 없다. 그런데도 5년이고 10년이고 대학병원의 외래를 찾으니 대학병원 의사들이 늘 바쁜 것이다. 대학병원에서는 초기치료를, 동네의원에서는 암 생존자들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해주도록 역할을 분장해야 한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과 동네의원 간 정보를 연계하는 수가를 개발하는 등 의료기관 간 중복과 비효율을 줄이는 수단을 써야 한다. 지금 서울아산병원 하루 외래환자가 2만 명이 넘는데 이렇게만 하면 5,000명은 당장 줄일 수 있을 것이다.”
_지난 정부가 공공의대를 만들어 매년 400명씩 특정 지역에서만 일하는 의사를 배출하려 했던 것처럼 특정 전공과만 의무적으로 할 수 있는 양성 코스를 만들면 어떨까.
“쉽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제도로 국방부는 군의관을 양성하고 군 의료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매년 20명씩 사관학교 졸업생이나 장교를 의대에 편입시키고 전문의 취득 후 최소 5년간 군의관으로 복무하게 하는 ‘군 위탁제도’를 운영했다. 이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어 왔는가를 살펴보면 정책 효과를 예측할 수 있다. 군에서 이 제도를 운영한 것은 군에 필요한 전공과목을 익히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 자료(2012년)를 확인하니 전공을 결정한 위탁생 50명 중 피부과, 안과, 정형외과 등 개원하기 편한 전공을 한 위탁생이 40%였다. 이들은 의무복무 기간이 지나면 거의 대부분 민간으로 나간다. 군 의료기관과 민간과 보수 차이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의사 숫자를 증가시켜도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중증이랄지, 응급이랄지 이런 일에 종사하는 의사를 배출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_의대생들이 특정과에만 갈 수 있도록 정부가 좀 더 강력한 통제제도를 만들 수는 없을까.
“우리나라 의료는 공급주체 90% 이상이 민간이다. 정부가 가격정책(수가)을 펴는 것 말고는 시장논리에 따라 의료계 행위자들이 움직인다. 의료인력을 일정기간 특정 영역에 종사하도록 묶어둔다고 해도 시장에서의 일자리가 훨씬 편하고 보상이 충분하다면, 군 위탁제도의 왜곡사례에서 보듯, 이동을 막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 이상적 해법이 아니라 현실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_진료지원인력(PA) 양성화나 외국인 의사를 도입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PA 양성은 생각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이기는 하다. 다만 PA가 양성화돼있고 별도의 양성체계가 있는 미국과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생물학 등 이공계 학부를 졸업한 사람이 PA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뒤 병ㆍ의원에 취직한다. 그리고 의사의 지시감독하에 진료지원을 한다. 미국, 영국, 캐나다 모두 이를 합법적으로 허용한다. 또한 그런 나라들의 병원 문화는 직역 간 활발히 토론을 할 수 있는 수평적 문화라 팀 어프로치가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수술이 많은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사실상 PA역할을 하고 있는데 제대로 된 훈련과정이 없다. 또한 굉장히 수직적인 병원 문화다. PA라는 직역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유령인간’처럼 의료활동을 하고 있는 간호사들을 병원이 제대로 관리 운영하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유도하는 게 현실적이다. 병원장의 권한으로 교육훈련을 시키고 진료행위의 일부를 위임시키는 게 현실적 대안이다. 외국인 의사도 생각해볼 수는 있으나, 꼭 해야겠다면 차라리 한국 의사를 늘리는 게 낫지 않을까.”
_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료계에서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가를 올려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수가는 어느 한쪽을 올려주면 다른 쪽을 깎아야 하는 방식이라 무한정 올려줄 수는 없다. 수가를 올려준다 해도 환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병원경영자는 진료과 개설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개입해 필수의료를 담당할 수 있는 센터를 만들어서 해결해야 한다. 예산을 들여 센터를 설립하고 의사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도 일정 정도 지원해야 한다. 그런 인프라가 있는 상황에서 건강보험 수가를 추가로 얹어주는 결합이 이뤄져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높은 난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에게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수술을 해야 전문가로서 성장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의사를 공급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을 때 ‘서울아산병원 사태’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복잡한 방법도 아니고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5년 안에 가능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신경외과만 해도 우리나라 인구 대비 신경외과 의사 숫자는 OECD 2위다. 하지만 실제로 뇌출혈 증상이 발생했던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에게 필요한 클립결찰술을 할 수 있었던 의사는 별로 없다. 보상이 충분하지도 않고 밤에는 응급으로 대기해야 하는 자리라면 굳이 하고 싶지 않은 게 인간의 마음이다. 정부가 자꾸 수가로만 문제를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분들이 일할 수 있는 센터를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_정부가 지원하는 공공적 성격의 의료센터를 운영해 성공한 사례가 있나.
“중증외상 응급분야에는 정부가 나름대로 투자를 많이 했다. 이국종 교수가 진료하는 아주대병원, 부산대병원에 중증외상센터가 만들어지면서 상당부분 응급의료 공백 문제가 개선됐다. 이전에는 사고로 다발성 골절상을 입으면 갈 데도 없었는데 완전히 해결은 안 됐지만 이제 이런 응급상황이 왔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고 센터 위치만 확인하면 해결 가능해졌다. 필수의료센터의 운영주체를 공공이냐 민간이냐따질 필요는 없다. 어쨌든 장비와 인력이 있는 상급종합병원들이 맡는 게 적절하다. 응급이송체계만 잘 갖추면 성공할 수 있다.”
_늘 필수의료가 필요한 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센터를 운영하다 보면 인력 낭비라는 지적이 나오지는 않을까.
“중증, 외상분야는 환자가 없어도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줘야 한다. 그게 국가의 책임이다. 산부인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2020년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가 이뤄졌다. 여성들의 교육수준도 높아지고 사교육비 등 육아부담이 늘어나면서 당분간 출생아 숫자가 늘어날 것 같지 않다. 산부인과ㆍ소아청소년과 수요가 감소하고 지원하는 의사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둘 것인가. 만약 아이가 장폐색이 와서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와도 수술할 의사가 없을 것이다. 이런 분야일수록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화재가 나건 나지 않건 평소에 소방서를 만들어 놓고 운영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소방서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 골고루 배치해야 하지 않는가. 의료수요와 별개의 공급구조를 갖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