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전기차 미국 생산 확대 논의하자" 제안...그러나 노조는 난색

입력
2022.08.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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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조에 '전기차 미국 생산' 논의 요청 
노조 난색 표하자 협상 테이블조차 마련 안 돼 
아이오닉 5·EV6 미국 생산시, 국내 물량 30% 줄어
노조 "美 생산시, 일자리 줄여 국내 직원만 피해"
아이오닉5, 美 보조금 못받으면 테슬라보다 비싸져


현대자동차그룹이 전기차 미국 현지 생산 확대 방안을 두고 노동조합과 협상 테이블조차 꾸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때문에 내년부터 현지 생산하지 않는 '아이오닉 5', 'EV6' 등은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됐지만, 노조는 전기차 현지 생산 확대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의 동의 없이는 기존 계획에 없는 전기차는 단 한 대도 미국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해법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4일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회사 측은 IRA가 미국 상원을 통과한 6일(현지시간) 이후 노조 집행 간부와 전기차 미국 현지 생산 확대 관련 논의 의사를 전달했지만, 노조 측이 난색을 표했다. 불과 한 달 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마친 상황에서 해외 생산 모델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차는 국내외 공장별 생산 차종을 결정하기 위해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 현대차 단체 협약에는 '해외공장으로의 차종 이관 및 국내 생산 중인 동일 차종의 해외공장 생산계획 확정시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노사공동위원회를 통해 심의·의결한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기아 단체협약에도 이와 비슷한 조항이 있다.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IRA 발효로 아이오닉 5, EV6는 내년부터 판매량 급감이 불보듯 뻔한데 노조 측에선 관련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며 "해외 현지 생산 물량을 늘리면 비용이나 여러 측면에서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예전부터 노조 반대에 번번이 막혀 왔다"고 말했다.



노조도 할 말이 있다. 아이오닉 5(울산1공장), EV6(화성2·3공장)를 미국에서 생산할 경우,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 아이오닉 5, EV6 국내 생산 물량의 50~60%는 해외로 수출하고, 그중 절반 이상이 미국으로 간다. 미국 판매 물량을 현지에서 생산할 경우, 국내 생산량이 20~30%가량 감소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노조 측은 "일감이 줄면 해당 공장 생산직도 감원할 수 있다"며 "해외 생산 시설을 확충하면 국내 투자 규모도 줄 수 있어 국내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원들만 피해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정의선 회장, IRA 해법 찾아 방미…정부 WTO 제소도 검토


이와 같은 노조의 반응에 현대차·기아는 속이 타들어가는 상황이다. IRA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내년부터 전기차 구매 보조금 7,500달러(약 1,000만 원)를 자국에서 생산한 차량에만 지급한다. 현대차와 기아는 현재 미국에서 전기차를 만들지 않고 있다. 올 연말부터 미 앨라배마 공장에서 제네시스 'GV70 전기차'를 생산하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판매량은 많지 않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올 상반기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에 이어 2위를 차지한 현대차·기아는 내년 폭스바겐,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내 전기차 생산 업체들에 밀릴 위기에 처했다.

실제 올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1만5,000대가량 팔린 아이오닉 5는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이 높은 차량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 모델 가격이 3만9,950달러로, 경쟁 모델인 △테슬라 '모델3'(4만6,990달러) △포드 '머스탱 마하-e(4만3,895달러) 등보다 4,000~7,000달러가량 저렴하다. 하지만 내년부터 보조금을 못 받으면 오히려 500~3,500달러가량 비싸진다. 가장 큰 장점인 가격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의 착공 시점을 내년 상반기에서 올해 10월로 앞당겨 2024년 하반기부터 가동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3일 미국 뉴욕으로 출국했다. 뉴욕 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이동해 호세 무뇨스 현대차 미국 법인장, 공영운 현대차 사장, 로버트 후드 현대차 워싱턴 사무소 부사장, 손용 현대차 미국법인 대관 상무 등과 IRA 해결책을 모색할 것으로 전해졌다.

또 미국 재무부에 IRA 관련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도 공조한다. 미 재무부는 올 4분기 중으로 IRA에 따른 세제 혜택 기준을 확정할 예정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현대차그룹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외교부는 IRA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원칙과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을 위배한 것으로 WTO에 제소를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미국에 직접 갔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아오긴 힘들 것"이라며 "IRA를 WTO에 제소하는 것도 시간이 4, 5년가량 걸리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지고, FTA 차원에서 해법을 찾거나 노조를 설득하는 방안이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류종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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