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로 돌아온 정은혜 "내 그림엔 실수 없는 거예요"

입력
2022.08.24 16:31
23면
'우리들의 블루스' 다운증후군 정은혜
그림 에세이 '은혜씨의 포옹' 출간

“내 그림엔 실수 없어요. 틀린 적 없어요. 네, 실수란 없는 거예요.”

빠져들 수밖에 없다. 정은혜(32) 작가의 당당한 매력에.

정은혜 작가가 본업으로 돌아왔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배우 한지민의 다운증후군 언니 ‘영희’ 역을 맡아 사람들을 웃고 울린 그는, 화가다. 24일 그림 에세이 ‘은혜씨의 포옹’을 펴냈다. 한지민을 향해 ‘너, 너, 너, 나 버렸지?’라고 절규 하던 드라마 속 영희처럼, 외로움과 그리움에 사무쳤던 그가 세상과 포옹하는 순간을 글과 그림으로 담아냈다.

모든 귀중한 것이 그러하듯, 정 작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잠시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날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정 작가는 “어.. 재미있는 책이에요. 글도 너무 마음에 들고. 눈에 들어오는 주황색 표지. 색깔들도 맘에 들고.”(책을 낸 소감을 묻자) “음.. 꽃도 보내주고. 음.. 저한테 잘해주죠. 생일 파티 때도 잘 챙겨주고. 손도 잡기도 하고. 정말 고맙죠.”(노희경 드라마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배우로 이름을 알렸지만 지역에선 원래 이름난 화가다. 2016년부터 경기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예쁜 얼굴 안 예쁘게 그려줍니다’라는 팻말을 내걸고 4,000여 명의 캐리커처를 그렸다. 그림은 그가 세상에 보내는 러브레터. “사람들 얼굴이 다 다르잖아요. 다 마음에 들어요. 다르니까 계속 그림을 그려요. 다 예뻐요”, “예쁜데 왜 못생겼다, 얼굴 깎아라 그래요? 자기더러 못생겼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책에는 정 작가가 누군가와 포옹하는 그림이 유달리 많다. 키 150㎝ 자그마한 체구로 상대의 가슴팍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다른 사람을 경계하고 선 긋고 미워하다 지쳐버린 마음에 ‘괜찮다’는 위로를 선사한다. “사람을 안으면 제가 따뜻해지죠. 따뜻하면 기분이 좋아지죠. 포옹은 사랑이에요.”

정 작가는 생후 3개월에 다운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혼자였다. 졸업해도 갈 곳이 없었다. 20대 초반까지 방구석에서 홀로 뜨개질을 하거나 이불 속에 움츠려 있었다. ‘동굴’이라고 그 시절을 표현했다. 화가인 어머니 장차현실씨가 연 미술학원에서 청소를 시작했다. 화실에 나온 아이들을 따라 그림을 그렸다.

장차현실씨의 말. “은혜씨는 ‘네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싶은 하등한 인간에 보내는 차가운 눈빛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마음의 병을 앓았죠. 그 상처에 연연하지 않고 그림을 통해 형벌의 시간을 예술로 승화했어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끝났지만, 현실 속 장애를 가진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정 작가도 다른 장애인 친구들이 아직 ‘동굴’에 있음을 잊지 않는다. “주눅들지 않고 행복하게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나와서는 음… 나랑 함께 놀자.” 서울 종로 토포하우스에서 이달 30일까지 책에 수록된 사진을 전시하는 '포옹전'이 열린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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