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가 자행한 인권침해"... 35년 만에 진실규명

입력
2022.08.2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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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원회, 191명 1차 진실규명 결정
105명 늘어난 총 657명 숨져... 증가 가능성
"강제노역, 가혹행위, 사망"... 인권유린 일상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공권력이 자행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결론 내렸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35년 만에 국가 기관이 처음으로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유린을 인정한 것이다.

위법, 탄압, 은폐... 전두환 정권 '국가폭력' 축소판

진실화해위는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형제복지원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가권력이 사회적 약자를 탄압한 대표 사례다. 1960년 형제육아원 설립부터 1992년 정신요양원 폐쇄까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복지원에 강제 수용한 뒤 강제 노역과 폭행, 가혹행위 등을 일삼았고 사망ㆍ실종으로 처리하는 등 온갖 인권침해 행위가 이뤄졌다. 복지원이 부산시와 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1986년에만 무려 3만8,000여 명이 입소했다.

진실화해위가 밝혀낸 국가폭력 범위는 방대했다. 부랑인 단속 규정과 수용 과정부터 헌법 및 법령을 위반했고, 인권침해와 사망자 처리 의혹, 조직적 축소ㆍ은폐 시도 등 정부 당국이 사건 전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랑인을 형사절차 없이 무기한 강제 수용할 수 있는 내무부 훈령 제410호가 사태를 촉발한 원흉으로 지목됐다. 복지원은 부적응자나 반항자에게 정신과 약물을 투여하고, 강제 노역 대가로 지급한 자립자금을 빼돌리기도 했다. 당시 운영진이 사망자 신상정보를 허위 작성하거나 시신을 뒷산에 암매장해온 그간의 언론 보도 역시 사실로 확인됐다.

이번 조사를 통해 사망자 수도 크게 증가해 당초 알려진 552명에서 105명 많은 657명으로 나타났다. 진실규명 대상에 포함된 피해자가 191명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진행될 추가 조사 결과에 따라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전두환 군부정권이 형제복지원의 참혹한 실상을 알면서도 피해 사실을 고의로 은폐ㆍ묵인한 정황을 담은 자료도 이날 공개됐다. 1986년 국군보안사령부 회의 문건에는 형제복지원을 ‘불순분자에 의한 조직적 집단행동 유발가능성이 높은 집단’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를 하는 곳’으로 규정한 내용이 들어 있다. 보안사 요원을 복지원에 위장 침투시켜 요주의 인물을 감시하기도 했다.

부산시 역시 피해자와 가족들을 회유하며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 이재승 상임위원은 “문제가 불거지자 집단적 인권침해를 개인적 범죄나 비리 문제로 축소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에 '사과' 권고했지만… 갈 길 먼 피해 보상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형제복지원 강제 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 회복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피해 생존자들이 배ㆍ보상을 받기까지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일단 진실화해위 권고에 강제성이 없는 탓에 보상을 받고 싶은 피해자는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진실규명 접수를 하지 못한 피해자들도 자료가 대부분 소실된 만큼 직접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배ㆍ보상은 개별 소송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진실규명 결과가 소송에서 유용한 근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 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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