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소비자 관점에서 확대돼야

입력
2022.08.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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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로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 이용 건수가 지난 2년여간 3,000만 건을 돌파했다. 국민 절반 이상이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셈이다. 코로나19 감염에 의한 이용뿐만 아니라 바쁜 직장인과 워킹맘, 거동이 불편하거나 고혈압, 당뇨, 탈모 등 만성질환 환자에 이르기까지 병원 방문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비대면 진료는 의료이용 문턱을 크게 낮췄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우려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3,000만 건이 넘는 사례에서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대형병원 쏠림 현상 등의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아 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지속 허용 의견이 76.1%로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감염병법에 따라 코로나19 상황이 '심각 단계' 밑으로 떨어지면 비대면 진료는 불법이 된다. 일상 회복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비대면 진료는 낡은 규제 속에 갇히게 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을 자랑하는 우리가 비대면 진료에 있어서만큼은 시대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 현재 OECD 38개국 가운데 비대면 진료를 규제하는 국가는 우리뿐이다.

다행히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국정과제로 삼았고, 의료계에서도 '피할 수 없는 흐름'에 대해 진취적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비대면진료협의체를 구성해 국정과제 수행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조정이 아닌 의료 소비자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이려는 자세다.

도서지역, 군장병, 장애인 등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매우 극단적인 수요와 재진 환자 등으로 대상을 한정해 의료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미 한시적 허용 기간에 비대면 진료와 약배송 서비스가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하는 것을 확인했다. 직장인, 육아맘, 1인 가구,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 반복적 처방이 필요한 만성질환자 등 국민 건강권 확대 차원에서 평소 병원 이용이 불편한 이들에게 비대면 진료를 확대해야 한다. 다만, 의료 상업화나 대형병원 쏠림 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비대면 진료는 우선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최고 수준의 의료인과 정보통신기술이 있음에도, 이를 비대면 진료에 활용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환자 안전과 관련해 지나치게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비대면 진료에 대한 논의조차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해관계자들의 논리가 아닌 의료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비대면 진료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길 바란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