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비자를 위한 대법 판결

입력
2022.08.23 04:30
25면

대법원은 지난 3월 보험사가 임의비급여 의료행위를 한 의사를 상대로 낸 실손보험금 반환 청구 사건의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다툼 대상은 보험사가 진료를 받은 사람을 대신(대위)해 의료기관에 실손보험금 상당의 진료비 반환청구를 할 수 있는지였다. 아직도 일부 의료기관은 과잉 진료와 부풀려진 의료비를 의료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 경우 의료소비자는 내역도 모른 채 의료비를 모두 지급하기 십상이다. 여기엔 국민건강보험법상 인정되지 않는 임의비급여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 임의비급여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진료행위로, 병원은 환자에게 청구해선 안 된다. 만약 환자가 임의비급여인지 알지 못한 채 병원이 청구한 의료비를 지급했다면 환자는 사후 민법상 부당이득 반환 청구를 할 수 있다.

민영 실손보험은 적법하게 부담한 의료비를 보장하는 것이어서, 임의비급여는 보상대상이 아니다. 임의비급여에 해당하는 영수증을 받아 실손의료비를 청구하고 보험금을 수령했다면, 환자는 나중에 보험사로부터 반환 청구를 받게 된다. 이 경우 보험금을 반환해야 하고, 다시 환자는 의료기관에 반환 청구를 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처한다. 전문가가 아닌 의료소비자가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로 큰 피해를 보는 셈이다. 앞의 공개변론 사안은 잘못 지급된 보험금을 보험회사가 환자에게 청구하는 게 아니라, 그를 대위해 의료기관에 직접 청구할 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그동안 법원은 금전채권자가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하려면 원칙적으로 채무자(이 경우 환자)가 채무를 갚을 자력(재산)이 없어야 한다는, 즉 채무자의 무자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다만 예외적으로 채권자의 채무자에 대한 채권과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이 직접 관련이 있으면 무자력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보험금 지급 원인이 의사가 발급한 영수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험사의 개개 환자에 대한 채권과 그 환자의 의사에 대한 채권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환자들의 무자력 여부와 무관하게 보험사의 채권자대위권 행사를 허용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민법 제404조도 채권자는 "자기의 채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대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채권은 재산권으로 양도성이 인정되고 그에 대한 강제집행도 일반화돼 있다. 채권을 행사하는 것은 존중되고 보호받아야만 한다. 법이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은 이상 채무자가 무자력이어야 한다는 요건을 붙여 채권자의 대위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대법원이 의료소비자를 우선하는 판결을 내놓길 기대한다.



오수원 파리1대학 법학박사·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