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승진을 위해 뇌물을 건넨 교감을 파면해야 할까. 연구용역 자금을 횡령한 대학 교수와 부당 인사로 직원의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준 인사권자를 해임해야 할까.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는 "파면과 해임은 부당하다"고 판단했지만, 상급심에서 모두 뒤집힌 것으로 확인됐다. 오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이달 29일로 예정된 가운데,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임' 판결과 '85만 원 접대 검사 면직 부당' 판결로 촉발된 오 후보자의 인식을 두고 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24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오 후보자는 2010년부터 3년간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 부장판사로 근무할 당시 "서울시교육청이 교장 승진을 위해 현금 500만 원을 인사담당관에게 준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교감 A씨를 파면한 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오 후보자는 '500만 원 이상 뇌물공여는 파면'이라는 교육청 징계 기준에 대해 "법원을 기속하는 효력이 없다"고 전제한 뒤 △A씨가 2008년 정기인사에서 부당한 순위 조작으로 교장 승진에 실패했고 △뇌물 800만 원을 준 다른 교감은 파면이 아니라 해임된 사실을 감안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개인적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직무 관련자에게 뇌물을 자발적으로 공여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파면 처분이 정당하다고 봤고, 대법원도 항소심 판단을 유지했다.
오 후보자는 2년 8개월간 연구용역 자금 2억7,000만 원을 횡령해 주식 투자 등에 쓴 혐의로 벌금 1,000만 원을 받은 대학 교수 B씨의 해임이 부당하다는 판결도 내렸다. 오 후보자는 "산학협력단이 용역계약과 관련, 적절한 관리·감독을 했는지 의심스러워 B씨에게만 모든 비난을 감수하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판결도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교수에게는 강한 도덕성과 사명감 등이 요구되는 반면, B씨는 장기간 거액을 횡령해 개인적 용도로 써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B씨가 횡령액 대부분을 공탁금으로 낸 뒤 산학협력단에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제기한 사실을 지적하며 "해임은 가혹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오 후보자는 부당 인사를 주도해 부하 직원의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준 공공기관 총무부장 C씨의 해임 조치가 타당하지 않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부당 인사를 한 것은 맞지만, 새로 발령받은 부서장과의 갈등이 극단 선택의 주된 원인이고 C씨는 단초를 제공했을 뿐이라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C씨는 부하 직원이 발령받은 부서에서 부당한 보직을 부여받으리라 예상했다"며 "사적인 감정으로 인사권을 남용해 극단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며 해임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오 후보자는 항만회사가 근무태도 평가 배점을 올리는 식으로 해고 대상자 선정 기준을 바꾼 뒤, 해당 항목에서 최하 점수를 받은 현장직 근로자들을 해고한 것을 두고도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오 후보자는 "팀장이 근무태도를 평가하면서 반장 등의 의견을 참조했으므로 해고 대상자 선정은 적법하다"고 봤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사측은 이전에 현장직 근로자에 대해 근무태도를 평가한 적이 없는데도, 팀장들은 불과 8일 만에 120~130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의 점수를 매겼다"며 "창의력 등 현장직 근로자들에게 적용한 평가 항목도 적절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판결은 모두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오 후보자는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 해고는 정당하지만, 85만 원어치 접대를 받은 검사 면직은 부당하다고 판결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야당에선 이를 두고 "줏대 없이 판결한 사람을 공정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할 대법관으로 삼겠다는 것은 황당하다"고 비판했다.
오 후보자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금액의 많고 적음만을 가지고 두 판결을 일률적으로 비교해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원심이 상급심에서 그대로 인정된 만큼 판결 내용이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급심에서 뒤집힌 판결이 여러 건 확인되면서 불공정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20년 넘게 법조계에 몸담은 한 변호사는 "모든 사건에서 완전무결한 판단을 내리는 판사는 없지만, 대법관 후보자로서는 아쉬운 판결"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