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은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4번째로 면적이 넓다. 평창읍과 7개 면에 산재해 있는 명소를 한 번에 둘러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접근성으로만 따지면 영동고속도로(장평IC와 진부IC)와 고속철도 역이 들어선 지역이 유리하다.
가을이면 메밀꽃이 만발하는 봉평면은 평창역, 사계절 사랑받는 월정사와 상원사는 진부역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KTX역에서 렌터카를 이용하면 여행이 한결 수월하다. 시외버스를 이용할 경우 장평터미널이나 진부터미널에 내리면 된다. 현지에서 여러 곳을 돌아다닐 게 아니면 택시를 타는 게 편리하고, 시간이 맞으면 농어촌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첫 여행지는 진부면 오대산국립공원으로 잡았다. 오대산은 글자 그대로 비로봉,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큰 산이다. 해발 1,500m 안팎의 우람한 능선 사이에 월정사와 상원사가 자리 잡고 있다.
월정사로 들어가기 전 전나무 숲길은 꼭 한 번 걸어야 하는 길이다. 원래도 명소였지만 드라마 ‘도깨비’에 방영된 후 더욱 유명해졌다. 하늘로 쭉쭉 뻗은 전나무가 짙은 그늘을 만들었고, 쏟아지는 숲의 향기에 절로 상쾌해지는 길이다. 넓고 평탄한 흙길이어서 맨발로 걸어도 무리가 없다.
월정사는 전나무 숲길 끝에 있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 율사가 세웠다는 절이다. 적광전 앞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고려 초기 양식을 대표하는 다각다층석탑으로 국보로 지정돼 있다.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고 절을 찾는 사람들도 많은데, 현재 상륜부를 해체·보수하는 중이어서 아쉽게도 온전한 모습을 보기 어렵다.
월정사에서 비포장도로로 약 9㎞ 더 들어가면 상원사에 이른다. 1951년 1·4 후퇴 때 북한군이 거점으로 활용할 것을 우려해 국군이 사찰을 불태우려 했으나 당시 주지였던 한암 스님이 필사적으로 막았다고 한다. 가사와 장삼을 차려 입고 법당에 들어가 정좌한 뒤 자신의 몸을 불태워 부처님에게 공양하겠다고 버텼고, 이를 본 국군 장교가 문짝만 태우고 돌아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덕분에 조선 세조의 종기를 치료했다는 ‘상원사 목조 문수동자상’과 신라시대 때 주조된 ‘상원사 동종’ 등 소중한 국보를 지킬 수 있었다. 상원사 뒤편 적멸보궁까지는 등산로가 나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며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봉안했다는 곳이다. 월정사와 상원사는 관람료는 성인 5,000원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면 산허리는 9월이면 온통 햐얀색으로 뒤덮인다. 이효석문학관, 효석달빛언덕 등 일대가 이효석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인근의 평창무이예술관, 허브나라농원도 메밀밭 여행객들에게 잔잔한 예술적 감성을 불어넣는 곳이다.
무이예술관은 폐교된 무이초등학교를 조각가 오상욱, 서양화가 정연서, 서예가 이천섭이 함께 꾸민 예술 공간이다. 운동장 곳곳에 대형 조형물이 설치돼 있고, 교실마다 서양화, 서예, 조각 작품 등이 전시돼 있다. 관람료는 3,000원이다.
허브나라농원은 이호순, 이두이 부부가 둘의 나이를 합쳐 100세가 되던 해인 1993년 조성한 국내 최초의 허브농원이다. 팔레트가든, 유리온실, 세익스피어가든, 코티지가든, 락가든, 나비가든, 중세가든, 어린이가든, 솔바람숲, 자작나무집, 마음의 뜰, 향기의 샘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나는 정원마다 은은한 향기가 묻어나 잔잔하면서도 깊은 휴식을 선사한다.
현재 분홍빛 플록스, 긴 꽃대를 자랑하는 보랏빛 리아트리스, 고운 자태를 뽐내는 백합, 거미줄같이 꽃술이 퍼진 풍접초, 황금빛의 루드베키아, 열정의 상징 해바라기 등이 활짝 피어있다. 허브 식물의 역사와 활용법 등을 전시한 허브박물관도 운영한다. 입장료는 8,000원이다.
봉평 여행의 핵심은 이효석의 고향에 조성한 효석문화마을이다. 이효석문학관은 그의 생애와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유품과 도서, 작품이 발표된 잡지와 신문을 등을 볼 수 있다.
문학관이 맛보기라면 바로 옆 ‘효석달빛언덕’은 이효석과 ‘메밀꽃 필 무렵’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는 공간이다. 복원한 이효석 생가와 함께 그가 활동했던 근대의 공간과 문학을 이야기로 풀어낸 근대문학체험관이 있고, 뒤편에 산책로를 겸한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소설 속 당나귀를 연상케 하는 나귀외양간, 평양에서 거주하던 공간을 재현한 ‘푸른집’을 거쳐 산자락을 한 바퀴 돌아온다.
푸른집은 작가가 가족들과 함께 지냈던 거실, 집필 공간인 서재에서의 행복했던 시간을 연출했다. 동선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책장이 열리며 비밀의 장소로 이어진다. 메밀꽃의 꽃말 ‘연인’을 위한 공간으로 작품 속 만남과 죽음, 사랑과 이별 등의 감성이 녹아 있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연인의 달’, 낭만적인 분위기의 ‘꿈꾸는 정원’, 효석달빛언덕이 한 눈에 내려다보는 ‘달빛나귀 전망대’ 등은 포토존으로 인기다. 허생원, 동이, 조선달, 당나귀 등 소설 속 등장인물과 작품의 밑바닥에 깔린 서정을 되살리는 공간이다. 이효석문학관과 효석달빛언덕 입장료는 각각 2,000원과 3,000원이며 통합 입장권 4,500원이다.
다음달 3~12일 효석문화마을 일대에서 ‘2022 평창효석문화제’가 열린다. 이 무렵이면 소금을 뿌린 듯 흐드러진 메밀꽃을 볼 수 있다. 현지 대표 먹거리로 새콤달콤한 메밀전병과 메밀막국수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