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는 '한복'뿐 아니라 미얀마와 카자흐스탄의 전통 의상도 등장했다. 다른 나라 국민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논란이 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의 MZ
"한국만 예민했다는 지적은 일방적이다. 전 세계가 한복에 담긴 중국의 의도를 호의적으로만 해석할 수 있나. 한복의 등장만으로 정작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 국민들의 불쾌감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을 중국이 간과했다." -한국의 MZ
한중 양국의 MZ세대 청년들이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모처에 모여 설전을 벌였다. 한중 수교 30주년(8월 24일)에 앞서 한국일보가 기획한 '반중 감정, 어디에서 오고 해법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열린 토론 자리에서다.
MZ세대의 반중 정서는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달 한국리서치가 국내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주변국 호감도 여론조사 결과 중국은 23.9점(100점 만점)으로 △북한(29.4점) △일본(29.0점) △러시아(23.3점)를 제치고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그중에서도 20대 이하(10점)와 30대(17.5점)의 반중 정서는 유독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중관계 미래 30년을 감당할 세대에서 반중 정서가 굳어질 경우 향후 우리 외교 유연성을 떨어뜨릴 위험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본보가 전문가 그룹이 아닌 양국의 평범한 MZ세대를 토론자로 선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날 토론자들은 한중 문화의 '유사성'과 '민족주의적 정서'를 반한·반중 감정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한중 간 문화적 유사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는 찰나에 민족주의 정서가 개입하자 '배격'이라는 행위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수천 년간 서로의 문화에 영향을 끼쳐 온 역사에 대한 인식 부족과 반중 감정을 자극하는 듯한 언론 보도도 양측 간 반목을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다만 토론자들은 반중 감정과 마찬가지로 중국 내 반한 감정 또한 커지고 있다는 통념과 달리 "한국 내 반중 감정에 비해 중국 내 반한 감정은 크지 않다"라거나 “인터넷 공간에 한정된 비합리적 목소리"라고 평가했다.
토론에는 한국 측에서 이수빈씨(베이징외대 국제경영학부 4학년)·김수린씨(런민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가, 중국 측에선 시에밍치씨(칭화대 슈와츠먼 컬리지 졸)·마페이양씨(칭화대 경영학과 3학년) 등 4명이 참여했다.
사회= "최근 이슈부터 짚어보자. 한복·김치의 기원에 대한 양국 MZ세대 간 논쟁이 반중 감정을 더욱 부추긴 것 같다."
시에(중)= "베이징올림픽 중국 선수단 명단을 살펴보면, '김씨' 성이 꽤 눈에 띈다. 아마도 중국을 이루는 55개 소수 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 선수들일 것이다. 개막식에 등장한 '한복' 또한 중국을 구성하는 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의 전통 의복이다. 한복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족의 전통 의상도 함께 등장했다. 유독 한국에서만 이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마(중)= "나는 어제 점심에도 파오차이(泡菜·김치와 비슷한 중국 음식)를 먹었다. 내가 한국의 김치를 먹었는지, 중국의 파오차이를 먹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중국에는 중국의 김치가 있고, 한국에는 한국의 김치가 있지 않을까. '김치가 중국 음식'이라는 중국 일부 유튜버의 주장에 '사실이다' 또는 '거짓이다'라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김(한)= "문제는 중국의 '태도'가 일방적이었다는 점이다. 조선족이라는 소수 민족을 챙기기 위해 한복을 활용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모두가 중국의 이 같은 사정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듯 '왜 한국만 민감하게 반응하느냐'고 비판할 수는 없다. 논란 이후에도 한국이 왜 이에 반발하는지 이해하려는 중국 측 노력은 미흡했다. 이웃 국가라면서 이웃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이(한)= "한국에서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K컬처의 상징이다. 우리 세대는 어려서부터 'K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태어나 보니 K팝, K무비, K푸드가 전 세계에 수출되고 있었다. 선배 격인 40대들은 반미 감정이 높았다고 하더라. 강대국 위주 정치에 대한 반발감이었다고 한다. 반대로 우리 세대는 우리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K문화의 '기원'을 문제 삼는 중국을 향한 반발심이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셈이다."
사회= "최근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코로나19 확산이 반중국 정서가 강해진 이유로 꼽힌다."
시에(중)= "에이즈가 처음 보고된 나라는 미국이다. 그렇다고 에이즈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미국을 탓하진 않는다. 아프리카 침팬지가 에이즈의 기원이라는 학설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프리카 침팬지를 비난하나. 전염병은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중국 또한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나라 중 하나다."
이(한)= "중국 역시 피해자란 말에는 동의한다. 다만, 많은 사람은 사태 초기 중국의 미흡했던 '대응'을 지적한다. 대처가 빨랐다고 보기도 어려웠고, 언론 보도도 상당히 통제됐던 것으로 보인다. 사태 심각성이 조금 더 빨리 전파됐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또한 중국은 사태 초기 외국인의 국내 입국을 막는 데만 급급해 보였다."
시에(중)= "중국은 연일 전염병 상황을 보도했지만, 대다수 국가가 남의 나라 일로 여기며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전염병 사태 초기 나는 유럽에 있었는데, 유럽에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 역시 귀국 항공편의 승무원들이 모두 방호복을 입은 모습을 보고 나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코로나19가 어떤 병인지 모두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지, 중국의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고 보기 어렵다."
사회= "유달리 한국의 MZ세대에서 반중 감정이 큰 이유는 무엇일까."
시에(중)= "중국과 한국은 공유해 온 역사만큼이나 문화적 유사성도 짙다. 애당초 양국 문화가 아예 달랐다면 오늘날의 갈등도 없었을 것이다. 비슷하기 때문에 '누구의 것이냐'는 논쟁이 따라붙었다. 여기에 전 세계적 현상인 포퓰리즘·민족주의가 더해지며 유독 한국 MZ세대의 반발심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김(한)= "한국 언론도 반중 정서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 MZ세대의 뉴스 소비는 정치 영역보다 문화나 스포츠 영역에서 더 많이 이뤄진다. 한복, 김치, 올림픽 편파 판정 등 중국을 특정 시각으로 보게 하는 뉴스들이 유독 많았다. 내용은 '팩트'인데, '감정'을 조장하는 팩트인 경우가 많았다. 언론도 반성할 대목이 있다."
마(중)= "한중 모두 MZ세대들만의 스트레스가 있다. 국가 경제는 풍족해졌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생활을 완성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은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 어느 세대건 정서적 불만을 표출할 대상이 필요하고, 한국 MZ세대는 중국을 불만 표출의 대상으로 택한 것은 아닐까."
사회= "중국 내 '반한 감정' 추이는 어떠한가."
시에(중)= "SNS를 예로 들어보겠다. 지인들과의 연락망인 위챗과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웨이보에서의 양상이 다르다. 나는 친구들과 위챗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한국 드라마가 재밌다고 이야기한다. 'N번방 사건'에 대해선 한국의 젠더 문제를 냉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이성적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웨이보는 다르다. 무턱대고 한국을 비난하는 비이성적인 반한 정서가 표출된다. 익명성을 이용해 비합리적 감정을 표출하는 일부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중국 전체의 의견을 대변할 수는 없다."
김(한)= "20년 전만 해도 중국인들은 한국을 '소(小)한국'으로 부르며 낮잡아 봤다고 한다. 지금은 다르다. 한국의 문화적·정치적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으로만 따지면 중국인들의 반한 감정이 커진 것 같지만, 더 긴 흐름으로 보면 반한 감정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마(중)= "중국 외교가 가장 직면한 과제는 중미 관계다. 중한 관계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진다. 올림픽 편파 판정 논란이나 단오절 기원 논쟁 등 특정 이슈가 나왔을 때 반한 감정이 종종 표출되지만 일시적이다. 한국 내 반중 감정에 비할 바 아니다."
사회= "양국 MZ세대 간 반목은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마(중)= "나는 한국 드라마 '제5공화국'을 보며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는 학교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 역사에서는 볼 수 없는 흐름이 존재하기 때문에 재미있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중국에 대해 이처럼 공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학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한)= "한국에 있을 땐 인터넷에서 떠다니는 정보로만 중국을 접했다. 여전히 중국 하면, '못사는 나라',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곳'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고,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유학 생활 중 중국의 발전상을 보며 많은 오해가 풀렸다. 결국 직접 소통하고 많이 교류하는 수밖에 없다. 많이 겪어야 오해도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