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린 꽃대네요. 대마초 중에서도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 성분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 부분입니다.”
11일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관세청 인천본부세관 특송물류센터.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소포 사이를 빠르게 움직이며 냄새를 맡던 마약탐지견 ‘밀리’가 갑자기 한 상자 앞에 멈춰 섰다. “저기 마약이 들어 있나 보네요. 마약탐지견은 마약 냄새가 나면 그 자리에 앉도록 훈련받거든요.”
박지용 핸들러가 밀리 앞의 소포를 뜯자 빼곡하게 상자를 채운 일상용품 사이로 말린 초록색 대마초 꽃대가 밀봉된 비닐팩에 감겨 있었다. 핸들러는 세관 현장에서 탐지견과 함께 마약 등 불법 물품을 탐지하는 직원을 지칭하는 말이다.
세 살 밀리는 탐지견센터에서 16주의 기초훈련을 마친 뒤 한 달 전 현장에 투입됐다. 이 기간 마약탐지견은 대마·코카인·헤로인·메트암페타민(필로폰)·해시시 등 주요 마약 6종에 대한 냄새를 완벽히 익히게 된다.
박 핸들러는 “하루에 마약탐지견이 살펴보는 소포 수는 수만 개”라며 “아무리 밀봉하고 숨겨도 마약 특유의 냄새는 묻어 나오게 돼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인천세관에는 밀리를 포함한 마약탐지견 20두가 활동 중이다. 지난해 전체 세관에서 마약탐지견이 적발한 마약 밀반입 건수는 218건(5.3㎏)이었다.
'마약과의 전쟁' 최전선인 이곳에선 세 단계에 걸쳐 마약 탐지가 이뤄진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화물을 대상으로 ①엑스레이 검사를 먼저 진행한 뒤 ②마약탐지견이 다시 한번 훑어본다. 이어 ③발송 국가와 소포 내용, 국내 배송지 등을 분석해 마약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물건에 대해 선별 검사를 진행한다.
미국에서 보낸 마약은 서울 유흥가로 배송되는 경우가 많은데, 서울 강남구가 수취인 주소이면서 해외에서 적발된 미국발 마약과 비슷한 은닉 수법을 썼을 가능성이 높은 소포를 찍어서 검사하는 식이다. 류하선 인천본부세관 특송통관1과장은 “한국에서 필로폰 1g 가격은 450달러 안팎으로, 태국(13달러)과 미국(44달러)보다 훨씬 비싸 밀반입 시도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통관 단계에서 마약을 적발하면 특별사법경찰로 이뤄진 마약조사과가 ‘통제 배달’에 나선다. 택배기사로 위장한 뒤 실제 배송지에 물건을 가져다주면서 수취인을 체포하는 것이다. 검찰청법 개정으로 500만 원 미만의 마약 밀수 사건은 관세청이 직접 수사할 수 있게 됐다.
김경훈 수사관은 “수취인이 부재 중이면 2~3일 잠복하는 일도 부지기수”라며 “긴급체포 후에는 포렌식 검사 등을 거쳐 10일 안에 사건을 송치해야 해 집에 가지 못하는 날도 많다”고 토로했다.
관세청이 지난해 국경 반입 단계에서 적발한 마약은 1,272㎏(1,054건)에 달한다. 국내 전체 마약 적발 규모의 90% 안팎으로, 관세청이 생긴 이래 적발량과 적발 건수 모두 역대 최고를 찍었다.
그중 필로폰·코카인·헤로인 등 주요 마약 8종은 987㎏ 규모로, 453만 명을 마약 중독에 빠뜨릴 수 있는 양이다. 마약 중독 치료비용(1인당 801만 원)을 감안하면 세관 단계의 적발만으로 36조3,000억 원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했단 뜻이다.
하지만 관련 인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전체 세관에서 마약 수사를 전담하는 인원은 지난해 35명에 불과했다. 1명이 약 13만 명을 중독시킬 마약을 1년 내내 적발하는 셈이다. 그나마 올해 12명 늘었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업무에 치여 허덕이고 있다. 현재 다른 부서에서 임시 투입된 겸직 인력까지 더해도 총 마약 수사 인력은 78명에 그친다. 경찰의 마약 수사 인력이 1,100여 명, 검찰은 280여 명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적은 소수 인력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셈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이미 시중에 유통되면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때문에 사전 차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통관 단계에서 마약 적발 중요성을 감안할 때 수사 인력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