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이후 한국 사회에 확산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성폭력 피해자의 우울감을 큰 폭으로 낮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투 운동이 사회적 연대와 지지로 작용해 성폭력 피해자의 정신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14일 학계에 따르면 김청아 캐나다 요크대 보건과학대학 박사후 연구원의 연구팀은 지난달 15일 미국 공중보건학회지(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에 게재한 '사회운동과 한국의 성폭력 생존 여성들의 정신건강, 2012~2019' 논문을 통해 이같은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미투 운동과 성폭력 피해자의 정신 건강의 연관성에 관한 경험적 증거를 제시한 최초의 연구다.
연구팀은 19~50세 여성 4,429명에 대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여성가족패널조사 데이터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미투 운동이 여성들의 정신 건강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기준 시점은 2018년 1월 29일로 설정했다. 이 날 서지현 전 검사는 상관으로부터 당한 성추행 피해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알렸으며, 이는 한국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분석 결과 미투 운동이 본격화한 이후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여성은 성폭력을 겪지 않은 여성에 비해 CESD(우울척도)가 1.64점 낮아졌다. 같은 자료로 분석했을 때 실직으로 인한 CESD가 0.43점 상승한 점에 비춰보면 4배에 가까운 변화다. 이혼(0.95점 상승), 결혼(0.76점 감소)과 비교해도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연구는 특정 사건이나 정책의 효과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사회과학 연구방법인 '이중차분법'을 사용했다. 이중차분법은 분석 집단이 특정 시점 전후 겪은 변화값(1차 차이)을 비교집단의 특정 시점 전후 변화값의 차이(2차 차이)와 비교하는 방식이다. 분석 대상인 '성폭력을 겪은 여성'이 특정 사건(미투 운동)을 전후로 경험한 정신건강의 변화값을 비교집단(성폭력을 겪지 않은 여성)의 변화값에서 뺀 결과를 미투운동의 효과로 봤다.
미투 운동이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책임 문제를 쉽게 거론하던 사회 분위기를 바꾼 게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미투운동으로 인해 ①피해자를 탓하는 문화를 바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줄였고 ②피해자에 대해 사회적 연대와 지지가 제공됐으며 ③성폭력 피해에 대해 사법적 판단을 다시 구하기 쉬워졌으며 ④기업과 각종 공공기관들이 성폭력을 줄이기 위한 제도를 도입한 점이 영향을 줬을 거라고 봤다.
연구팀은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인식과 제도의 개선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청아 연구원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피해자다움'을 앞세운 무고죄 몰이와 사실적시 명예훼손 같은 구시대적인 법을 활용한 2차 가해는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며 "이런 사회적 관행의 개선은 성폭력 피해자를 구제하는 사법 효과만이 아니라 정신건강을 개선한다는 보건효과까지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