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 너머엔 위로보다 욕망이"… '애견 화장장' 된 전시장

입력
2022.08.15 04:30
16면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 작가 류성실 개인전
‘불타는 사랑의 노래’···아뜰리에 에르메스서



"제가 개들을 굉장히 애호합니다. 우리 강아지 고객님들은 상당히 친환경적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의 화장은 환경오염이 심하다며) 화장장 연료비만 5,000(만 원)씩 나옵니다. 하지만 강아지 고객님들은 적은 연료비로도 하늘나라에 잘만 가시니까 너무 좋습니다."
류성실 개인전 속 허구의 애견상조 대표

값비싼 의류 매장이 늘어선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애견 장례식장'이 들어섰다. 슬픔을 이용해 한몫 잡겠다는 욕망이 사방에서 끓어오르는 공간이다. 대리석을 흉내낸 시트지로 마감한 벽체부터 조폭들처럼 허리를 굽히고 늘어선 화환까지. 상실감을 위로하는 공간 본연의 기능이 남김없이 뒤틀려 있다. 화장 과정을 중계하는 영상에서는 장례식장 직원에게 죽은 강아지가 빙의해 "엄마!"를 외친다. 타오르는 불과 발을 구르는 견주가 겹쳐지는 장면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기괴하다. 한국 시장 경제의 단면과 물신주의를 가상의 애견 장례식장으로 재현한 류성실 작가의 개인전 '불타는 사랑의 노래'가 10월 2일까지 메종에르메스도산파크 지하 1층 전시공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다.



류 작가는 온라인 공간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미디어 작품을 선보여 왔다.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에서 작가가 직접 '체리 장'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북한이 남한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했다며 천국 시민권을 사라고 부추기는 식이다. 1993년생으로 2018년 조소과를 졸업한 류 작가는 경력은 짧지만 지난해 제19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받았다. 이번 전시는 물리적 공간에서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드문 자리다.

‘돈 된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정신은 대왕애견상조 대표 이대왕 캐릭터로 체화한다. 이대왕은 감염병 대유행 탓에 여행사 ‘대왕트래블’을 폐업하고 ‘대왕애견상조’로 재기를 꿈꾸는 인물이다. 그는 장례식장 입구의 안내 영상에서 연료비를 운운하며 창업 계기를 설명한다. 그는 “우리 유족들이 너무 울지만 말고 오히려 파이팅을 얻어 가시는 그런 쪽으로 발전이 되기를 바란다”고 견주들 마음에 불을 지르더니 화장 영상에서는 자작곡 ‘진짜배기 사랑’을 부르며 위로한다.



다만 작품에는 물신주의를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모호하게 남겨진 부분이 있다. 현실에서 빌려온 수많은 요소가 정교하게 배열됐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의 현실 재현으로만 비칠 수 있다. 전시 안내서는 “류 작가는 양극화나 빈부격차와 같은 파생적 결과를 성찰적으로 비판하는 대신, 그 자신을 포함해 오늘날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돈에 대한 원초적이고 강렬한 개인들의 욕망을 추적한다”고 설명한다.

류 작가는 자유로운 해석을 환영한다. 그는 최근 통화에서 “제 작업이 현대미술의 아우라 안에서 해석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며 "미술관은 권위 있는 공간이지만 그 안전함이 작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저는 온라인에서 작업을 하고, 사람들이 편하게 즉흥적으로 댓글을 다는 것이 즐겁다"며 "제 작업을 엄청나게 분석적으로, 문화사회적 배경으로 해석한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그보다는 가볍고 편하게 직관적으로 제 작업을 봐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