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간접광고라니... 청와대 '예능 1번지'의 두 얼굴

입력
2022.08.1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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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핫플' 된 청와대 
지상파 넷플릭스 등 잇따라 활용
"탈권력 카타르시스" 
'지도에 나오지 않던 권력 요새' 호기심 자극
'청와대 방문한 소파' 간접광고 노출 등 논란
'이러려고 개방했냐' 비판
시설 훼손, 상업성 우려 커져
역사, 시민 공간 따로... 학계 활용 방안 논의

청와대가 '예능 1번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지상파 방송사 등이 5월부터 일반에 개방된 청와대를 탈권력의 무대로 앞다퉈 활용하고 있는 데 따른 변화다.

조선 시대 경복궁 후원이었던 청와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74년 동안 최고 권력자가 가족과 함께 지내며 업무를 보던 곳이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던 이 은밀한 곳이 예능 소재로 활용되면서 시청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시설 훼손 우려뿐 아니라 상업화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잡음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공개 후 다섯 차례... 탈권력의 해방감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은 14일 기준 KBS에 2회, SBS·넷플릭스·iHQ에 각 1회씩 총 다섯 번 청와대를 예능 관련 촬영으로 내줬다. 청와대가 공개된 석 달여 동안 한 달에 많게는 두 번꼴로 청와대에서 예능 촬영이 이뤄진 것이다.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 관계자는 "대관은 모두 무료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예능 요람으로 주목받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 ①헌정 이래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상징이었던 공간을 활용해 반전의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고 ②대관 비용의 진입 장벽이 전혀 없는 점 등이 꼽힌다. 가수 겸 배우 비는 6월 청와대에서 1,000명의 시민을 초대해 깜짝 공연을 했다. 연내 공개될 넷플릭스 음악 예능 '테이크 원' 촬영 일환으로, 비는 '당신이 죽기 전, 단 한 번의 무대만 남길 수 있다면'이란 질문에 청와대를 무대로 택했다. 김교석 방송평론가는 "예능의 무대가 된 청와대를 지켜보며 시청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며 "청와대가 요즘 다양한 세대에게 인스타그래머블, 즉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 좋은 '사진 맛집'으로 통하면서 더 각광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 권력자들만 쓰다 빗장이 풀린 공간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적극 활용됐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쪽의 청와대'라 불린 충북 청주시 소재 청남대를 2003년 일반에 전격 공개한 뒤, 이곳에선 '제빵왕 김탁구'(2010) '태양의 후예'(2016) 등 시청률 40%에 육박한 드라마들이 줄줄이 제작됐다. 역대 대통령이 휴가를 즐기던 공간으로 역사의 단편뿐 아니라 대청호를 낀 천혜의 풍광을 품은 덕분에 드라마의 요람으로 다시 태어난 사례다.


제품 홍보에 노출... 역사적 공간의 퇴색

관건은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대한민국 최초 청와대를 방문한 소파'. 5일 iHQ OTT 플랫폼 바바요에 이런 자막이 뜬 8분여의 영상이 올라온 뒤 온라인은 발칵 뒤집혔다. 청와대 본관 앞뜰에 소파가 등장하는데 이 제품은 신세계 그룹 산하 업체의 가구로, 자막으로 소파 제품명까지 등장한 탓이다. 6월 제정된 청와대 관람 등에 대한 규정에 따르면 영리 행위가 이뤄질 경우 청와대 사용 허가는 금지된다. 커뮤니티엔 '이러려고 청와대 개방했냐' 등 문화재청과 제작진을 비판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청와대가 역사적 의미가 큰 공간인데 특정 업체의 홍보 공간으로 비쳐 격이 하락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논란이 확산하자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은 9일 "협의 과정에서 iHQ 측에서는 특정 브랜드의 소파 제품이나 기업체에 대한 언급, 기업 홍보용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향후 계획에 대한 설명이 일절 없었다"며 "애초 허가된 촬영 목적과 다르게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영상에 대해 게시물을 내릴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iHQ는 결국 유튜브에서 영상을 내렸다. 그러면서 "최근 대중에 개방된 청와대에서 영상을 제작하면 시청자의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며 "의외의 공간과 소품이 어우러진 장소에서 시민 반응을 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잡음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집사부'는 왜 갔을까... '시민 공간' 따로 논의도

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도 지난달 청와대라는 시설을 주인공으로 2주 동안 특집을 내보내 입방아에 올랐다. 청춘에게 삶의 멘토가 될 만한 인사를 만나 그 이야기를 다루는 취지의 프로그램과 겉돌았다는 지적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집사부일체'에서 지난해 경복궁 편을 내보내긴 했지만 한 회로 다뤘다"며 "청와대 편은 '어떤 사부를 만났지?'란 의문이 들었고 역사학자의 시설 가이드 같은 인상을 줘 어색했다"고 말했다.

문화재계는 수백여 명이 모여 공연 혹은 예능 프로그램 제작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시설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 관계자는 "청와대 건물을 최대한 쓰지 않고 야외 촬영 때도 자체 발전 장비를 가져오는 방향으로 공연·촬영 대관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능 1번지가 된 청와대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문화재청은 청와대 활용 방안에 대한 연구 용역을 외부에 맡겼다. 김정현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청와대 본관과 관저 등 핵심 건물은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그 외 부속 건물은 시민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구상을 담은 보고서를 이달 말 문화재청에 제출할 예정이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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