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올해 상반기에만 14조3,000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연료비와 전력 구입비는 급증한 반면, 전기료는 거의 오르지 않으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하반기에도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연간 30조 원대 적자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
한전은 12일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영업손실 14조3,033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 1분기 7조7,869억 원의 역대 최대 영업손실을 낸 데 이어 2분기에도 6조 5,164억 원의 적자를 본 것이다. 2분기 손실액 역시 지난해 한 해 적자인 5조8,601억 원을 웃돌았다.
이번 적자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약 7,500%에 달한다. 전기 판매수익 등 매출액은 3조3,073억 원 증가에 그친 반면, 연료비·전력구입비 등 영업비용은 17조4,233억 원 급증한 탓이다. 실제 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전이 발전사들에 전력을 사올 때 적용하는 전력도매가격(SMP)은 상반기 169.3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17.1% 상승했다. 그러나 한전의 상반기 전력 판매 가격은 110.4원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본 셈이다.
한전의 영업적자는 하반기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국제 시장에서 가스 가격이 폭등하고 있고, SMP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SMP는 4월 202.11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6월 129.72원까지 떨어졌지만, 이달 들어 다시 200원 선을 웃돌고 있다. 하반기에도 15조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연 30조 원은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약 5%에 달하는 수준이다.
문제는 한전이 대규모 적자로 휘청일 경우, 그 파급력이 작지 않다는 점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장은 "한전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발행한 회사채가 우리나라 한 해 회사채 발행 규모의 절반에 달한다"며 "중소기업의 회사채가 팔리지 않거나 이자율이 높아져 가뜩이나 어려운 중소기업들을 더 벼랑으로 내몰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력공급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기반시설 구축 및 연구개발, 시장 조성 등을 하려면 한전이 선제적으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적자가 계속 쌓이면 쉽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발전사들도 적자에 시달리다 고용과 투자를 멈췄다"며 "발전사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문이라도 닫으면 올겨울은 최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력산업 생태계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전기료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제통화기금(IMF) 또한 4일 유럽연합(EU) 정부에 에너지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보다 가격을 반영한 뒤 빈곤층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권고했다. 세계은행도 5월 보편적 에너지 가격 보조 조치가 잘못된 가격 신호를 전달해 소비효율 및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온다고 발표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물가 인상을 핑계로 전기료 인상을 억제하면 결국 그 빚을 계속 미래로 떠넘기는 것밖에 안 된다"며 "도리어 전기료를 인상하면 소비가 억제되고 전력산업 생태계도 정상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 또한 "전기료 인상으로 인한 물가상승 부작용보다는 인상하지 않아 발생하는 전력생태계 붕괴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다"며 "금리 자이언트 스텝처럼 전기료도 최소 50원 정도의 파격적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