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러시아 시절 사이비 수도승 그리고리 라스푸틴은 우연히 황제 니콜라이 2세 외아들 알렉세이 황태자의 혈우병을 치료하게 되었다.
이후 라스푸틴은 '기적을 일으키는 자'로 추앙받으며 황제와 황후의 전폭적 신임을 바탕으로 모든 권력을 손에 넣게 된다. 그는 장관의 임명과 해임을 결정할 수 있는 인사권을 비롯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심지어 세금까지 멋대로 징수하는 등 그의 힘은 무소불위였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황제가 전쟁을 직접 지휘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자 라스푸틴은 러시아를 완전히 장악했다. 더욱이 황제에게 군사작전까지 지시했으나 러시아군은 참패했다.
그의 전횡으로 러시아가 혼란에 빠지고 민심은 돌아서도 황제는 그를 감싸기에 급급했다. 결국 황족들이 나라를 위해 라스푸틴을 살해했다. 이때가 1916년 12월이었고 이듬해 10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다. 황제 가족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처형되었고 이로써 로마노프 왕가는 몰락했다.
서구권에서 라스푸틴은 '간신'의 대명사 중 하나로 여겨진다. 러시아에서는 '괴승(Безумный Монах)'으로, 영어권에서는 '미친 수도자 라스푸틴(Mad Monk Rasputin)'으로 불린다. 홍준표 대구 시장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라스푸틴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선 1882년 조선에서는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도망갔던 고종 왕비 명성황후(明成皇后, 민비)가 피란지 장호원에서 무당 박창렬을 만났다. 무당은 당시 암울했던 민비에게 환궁을 예언했고 그대로 실현됐다.
왕비는 환궁할 때 무당과 동행했으며 그녀에게 '진실로 영험하다'는 의미의 '진령군(眞靈君)'이라는 군호를 내려주고 '언니'라 부르며 궁궐에 함께 살았다. ('오하기문(梧下記聞)') 진령군은 창덕궁에서 함께 살다가 사당을 챙겨 나갔다. 노론 거두 우암 송시열 집터에 지은 사당 이름은 북관왕묘(北關王廟)다. 삼국지의 장수 관우, 즉 관왕을 모신 동묘(東廟, 東關王廟)와 같은 급이다.
왕조 시절 '君'의 칭호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의 아들이나 왕실과 종친, 또는 딸이 왕의 부인이어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드물게는 이하응(흥선대원군)처럼 왕의 부친이어야 했다. 신료의 경우 역사에 이름을 남길 공을 세우거나, 영의정을 역임하는 것은 물론 당파를 이끄는 영수로 활약하면서 군주의 신임까지 돈독해야 군호를 받을 수 있었다. 천민의 신분인 무당이, 그것도 여성으로서 군호를 받은 인물은 진령군이 조선 역사상 유일하다.
왕과 왕비는 모든 판단을 그녀에게 의지했다. 고종 뒤에는 명성황후가, 명성황후 뒤에는 진령군이 있었다. 왕실에서는 굿판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에게 줄을 대기 위해 탐관오리들이 길게 줄을 섰다.('무교(巫敎)')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후 그동안 피해를 본 자들과 죄상을 고발하는 자들이 줄을 잇자 내각이 조치에 들어갔다. 1894년 전 형조참의 지석영은 "요사스러운 계집 진령군의 살점을 사람들이 씹어 먹으려 한다"고 상소했다. 진령군은 갑오경장 때 사형을 선고받고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다.('박종인의 땅의 역사')
조선과 러시아의 황제와 황후는 진령군과 라스푸틴의 꼭두각시였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서나 신(神)의 계시를 받았다는 사이비 예언자들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허약한 통치자의 불안한 심리가 이들의 먹이가 되었다.
최근 시중에서는 '검사 위에 여사, 여사 위에 법사가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법사는 무당의 또 다른 명칭이기도 하다. 그 법사가 신(神)들린 강신무(降神巫)이지 가업을 이어받은 세습무(世襲巫)인지 정체도 확실치 않다. 또 호칭도 희한한 '천공 스승'도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이들 의혹에 "어떤 정부에나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