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원대 휘발유' 출혈 경쟁…주유소 사장님들 왜 그랬을까

입력
2022.08.1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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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끝난 '황상대첩'
업계 "그릇된 출혈경쟁" 씁쓸


11일 경북 구미시 황상동 일대엔 주유소 두 곳을 향한 긴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부터 수출대로를 가운데 두고 마주한 알뜰인동주유소와 황상동양셀프주유소에서 촉발된 '기름값 폭탄세일' 경쟁 소식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퍼지면서다.

이날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휘발유 가격은 리터(L)당 1,815원이었지만, 두 주유소는 이보다 무려 500원가량 저렴한 L당 1,300원대에 판매했다. 가격 경쟁의 정점은 오후 3시쯤. 두 주유소 모두 휘발유 가격을 1,293원까지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1200원대를 기록했던 마지막 시기가 2020년 6월 8일(1,299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년여 만에 1,200원대 휘발유가 등장한 셈이다. 이들은 전국 평균 L당 1,900원대였던 경유도 무려 400원 이상 내린 L당 1,500원에 팔기도 했다.



갑자기 2년 전 가격?…가격 구조 의문으로 불똥


유류세 인하 확대 조치와 맞물려 국제 유가까지 하락한 지난달부터 기름값이 꾸준히 내리긴 하지만, 전국적으로 1,600원대 휘발유도 보기 힘든 상황에서 벌어진 '폭탄세일'이다 보니 실제 이곳을 다녀간 소비자들은 SNS에 '주유 인증샷'까지 올리며 실시간으로 정보를 나눴다. 누군가는 "(주유를 위해) 두 시간을 기다렸다"면서도 그래도 시간이 아깝지 않았단 반응도 내놨다.

이른바 '황상대첩'으로 불린 두 주유소의 출혈 경쟁은 그러나 단 하루 만에 막을 내렸다. 두 곳 모두 12일 오전 9시 기준 휘발유 가격을 인근 주유소 가격과 비슷한 1,690대로 돌려놨다. 오후 2시 기준 두 주유소는 휘발유와 경유를 각각 1,672원, 1,772원에 똑같이 팔고 있었다.

황상대첩의 불똥은 정유사 공급 가격 및 주유소 판매 가격에 대한 폭리 논쟁으로도 튀었다. 이틀 사이 기름값이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어나자 커뮤니티 내 일부 소비자들은 "주유소들도 남으니 저럴 텐데, 유류 유통 구조를 손봐야 한다"거나 "실제 1,200원대가 적정 가격 아니냐"며 물음표를 던졌다.



"손해 보고 팔았다"…씁쓸함 남긴 황상대첩




이날 본보와 연락이 닿은 인동주유소 관계자는 출혈경쟁 배경을 묻는 질문에 어두운 목소리로 "제가 손해를 보고 팔았습니다"라는 짤막한 한마디만 남겼고, 황상셀프주유소는 종일 연락이 닿지 않았다.

황상셀프주유소에 제품을 공급하는 SK이노베이션 측은 "정유사 공급가와 상관없이 주유소에서 개별적으로 출혈 경쟁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고,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주유소들이 L당 100원 안팎의 마진을 남기는 구조를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책정될 수 없는 가격"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주유업계는 이번 사건을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들이 가격 경쟁을 벌인 지역은 삼성전자와 삼성SDS, LG전자, LG디스플레이, 효성티앤씨, LS전선, 도레이첨단소재, SK실트론 등 대기업 공장들이 모여 있는 구미3공단 입구라 가뜩이나 주유소들끼리 가격 경쟁이 치열한데, 인접한 두 주유소가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치킨 게임을 벌인 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치열한 가격 경쟁과 친환경차 보급 증대로 문을 닫는 주유소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2011년 말까지 1만2,901곳이던 주유소 영업장 수는 2020년 말 1만1,399곳으로 무려 1,500곳 이상이 줄었다. 10년이 채 흐르지 않은 시간 동안 약 12%의 주유소가 문을 닫은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출혈 경쟁으로 두 주유소 모두 하루 수천만 원대 손해를 입었을 것"이라며 "가격 정책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 떨어질까 걱정된다"고 전했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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